[생각다이어리] 현대판 모던타임즈
[생각다이어리] 현대판 모던타임즈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0.1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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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브레이크 타임’을 운영하는 식당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보통 3시부터 5시까지.
이 시간대에 손님을 들이는 식당은 이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처음엔 식당들이 종업원의 복지를 좋게 하고 저녁메뉴 준비를 더 잘하려고 쉬는 시간을 갖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영업자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고육책임을 알게 됐습니다.
주방에서 마지막 주문을 받는 마감시간도 앞당겼습니다.
그래서인지 좀 늦은 저녁시간에 식당을 찾으면 마지막 주문시간을 알려주는 식당들이 늘었습니다. 이 또한 같은 이유입니다. 

바뀐 식당 풍경은 또 있습니다.
한창 붐비는 시간대면 일분이 멀다 하고 울리는 소리 ‘딩동, 배달의민족, 주문~’, ‘쿠팡이츠, 주문~’ 같은 배달앱 주문 알림 소리입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식당 사장과 종업원의 동작이 멈칫거립니다.
홀에 앉아 밥을 먹는데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덩달아 나도 마음이 급해집니다. 투박한 헬멧을 쓴 배달기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겨우 300미터 거리인데 배달비를 3천원이나 내는게 아까워 포장으로 주문하고 직접 찾으러 간 적 있습니다.
유명한 치킨 프랜차이즈인데 좀 일찍 도착해서 매장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두 명, 둘 다 주방에 있습니다. 

두 사람 중 나이가 많은 쪽이 사장인 듯했습니다.
주문받는 종업원은 따로 없고 매장 입구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손님이 직접 주문하고 음식도 받아가는 시스템입니다.
주방에 있는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손을 움직였습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으론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은 표정이 없어 보였습니다. “주문번호 230번인데 아직 멀었나요?” 라고 내가 묻자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때 ‘딩동, 배달의민족, 주문~’ 배달앱 소리가 가게를 채웁니다.
사장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합니다. “아, 금방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시 ‘딩동, 배달의민족 주문~’ 

치킨을 받아 나오면서 흑백 무성영화 《모던타임즈》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계속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춰 쉬지 않고 나사를 돌립니다.
그러다 재채기 한번 했을 뿐인데 속도를 놓치고 맙니다. 결국 기계장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인공. 

100년 전 《모던타임즈》의 배경이 되는 일터와 방금 내가 본 일터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이보다 더 바쁠 수 있을까요.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멍한 상태로 이대로 가다간 사람이 쓰러지거나 현재를 살피지도 못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건 언감생심.
우리 사회 전체가 그 단계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