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다이어리] 무수한해답
[생각 다이어리] 무수한해답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9.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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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자기 주장이 분명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았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라고 선생님이 물으면 나를 포함해 대부분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하는데 그 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선생님을 쳐다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선생님이 자기를 호명할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논쟁적인 주제일수록 단호하고 또렷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게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걸 그 어린 나이에 알았던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나이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자신있고 명쾌하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자주 틀리고 상식과 동떨어질 확률이 높다는 사실입니다.
똑부러지게 말하는 것과 자기 주장을 상대가 이해하게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

언어는 자신의 경험세계에 갇혀 있고, 인간의 공감능력은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만 확장됩니다.
열정적이며 정의롭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자신과 다른 견해에 배타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진리는 없습니다.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도 좀 더 합리적이었으면 합니다.
사실과 현상, 정보와 추측, 의견과 주장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논거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이유나 이론입니다. 이에 비해 증거는 믿음이나 진술이 진실이거나 타당하다고 믿게 하는 정보와 사실을 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이 여러 가지를 마구 섞어 말합니다.
그러니 내놓는 ‘결론’이라는 게 설득력도 없고 신뢰도 가지 않습니다.

열정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세상에 유일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뿐인 ‘정답’이란 암울했던 독재시대에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세상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수한 해답’들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도덕적 선민의식으로 똘똘뭉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일기들을 쭉 한번 훑어보았습니다.
신변잡기들이 대부분이지만 남과 우리 사회의 허물을 찾아내 훈계하듯 지적질하는 글들이 꽤 많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 주제도 못되면서 말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죄 없는 자들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던 예수님 말씀이 비수처럼 꽂힙니다.
어쭙잖은 돌던지기를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 에너지를 더 많이 쏟아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