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코드-리페어] 친환경 '수선'이 명품을 만든다 ①리페어
[컬처코드-리페어] 친환경 '수선'이 명품을 만든다 ①리페어
  • 이서련 기자
  • 승인 2022.04.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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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jingdaily.com

값비싼 만큼 고급스럽고 호화스러운 명품. 이를 고쳐서 쓴다면 그 럭셔리함과 가치는 떨어질까? 과거에는 명품을 수선하느니 새것을 사는 것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경제적 여유와 구매력이 뒷받침되는 사람에게 '새것'은 항상 좋은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것은 돈을 절약하는 방법일 뿐 '고급'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즉 수선, 수리를 뜻하는 리페어(Repair)는 럭셔리함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생각이 차츰 변화하고 있다. 낡고, 고장났다고 바로 버리는 것보다 가능하다면 다시 기능을 회복해 사용하는 것이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아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리페어는 친환경의 표상이자, 철학적인 소비자가 가진 멋진 소비습관이 됐다.

■세계최고 럭셔리 브랜드들의 변화...왜?

아닌 게 아니라 세계 최고 럭셔리 브랜드들부터 달라지고 있다. 

에르메스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2020년 10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럭셔리는 수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1960~1970년대 자신의 조부에게 들은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몇 십 년 전 들었던 말을 최근 화두로 다시 꺼낸 것은 에르메스가 리페어를 바라보는 시각이자 철학을 보여준다.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에르메스 창업자의 6대손으로, 1978년부터 2006년까지 에르메스의 CEO이자 회장을 맡았던 장 루이 뒤마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에르메스를 세계적인 럭셔리브랜드로 올려놓은 버킨 백, 켈리 백을 만든 사람이다. 초과 수요에도 품질 관리 및 희소성을 위해 공급량을 늘리지 않았고, 대기 리스트도 만들며 제대로 럭셔리함을 구축했다. 위에 언급한 조부는 로베르 뒤마인데, 창업자의 3대손인 에밀 에르메스의 사위다. 

현 에르메스 회장인 악셀 뒤마는 피에르 알렉시 뒤마의 사촌동생이다. 제품생산 시 180년전 가죽 장인의 방식을 고수하며 6대째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에르메스의 피에르 알렉시 뒤마가 '오래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 즉 리페어에 대한 화두를 대외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강조한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단순히 빈티지나 앤티크 같은 새 장르를 런칭하거나 내놓은 것이 아니고 제품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최고 럭셔리 백화점으로 손꼽히는 셀프리지(selfridges) 역시 2020년 프로젝트 어스(Project Earth)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는 5년간 진행될 장기 프로젝트로 렌털과 리페어, 재사용이 포함돼 있다. 다소 모순되게도 값비싼 물건 위주로 파는 럭셔리 백화점이 수선, 재사용, 대여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수선공간으로, 백화점 내 수선을 받는 리페어 컨시어지 부스는 눈길을 끌 만큼 아주 크고 세련되게 마련돼 있다. 적극적으로 수선을 다루면서, 고객이 가진 옷이나 악세사리를 리셀(Resell)할 수 있는 사업도 런칭했다.

자료: selfridges.com
자료: selfridges.com

화장품 업계 역시 비슷하다. 에르메스는 상반기 립스틱을 출시하며 화장품 사업에 발을 내딛었는데, 립스틱 하나에 9만원대가 넘을 정도로 고가다. 샤넬과 구찌의 립스틱이 4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비싼 편이지만, 차별화된 점도 있다. 바로 리필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케이스가 리필이 가능하도록 생산됐고, 이 리필제품은 완제품의 반값 정도다. 블러시 제품도 리필용을 판다.

아무리 멋진 케이스에 담긴 립스틱과 블러시라도 다 쓰고 나면 케이스는 버려지게 되는데, 그 케이스를 그대로 재활용함으로서 환경성을 부각한 것이다. 럭셔리 제품을 오래 사용하면서 적어도 케이스를 다시 만드는 만큼의 자원 낭비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따라 국내 뷰티 업체들도 최근 화장품 용기 재활용에 '화장품 리필스테이션' 운영을 확대하는 추세다. 샤넬코리아,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이 백화점, 단독매장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리필용기를 구매한 후 원하는 화장품을 담아 구입하도록 한다. 제품을 모두 사용하고 나서는 리필용기를 갖고 다시 방문하면 용기를 소독해줘 재사용이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는 가장 먼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게 되는데, 이들이 아껴 쓰고 고쳐 쓰는 일을 멋진 것으로 규정지으면 메시지가 타 분야로 퍼질 확률이 크다"면서 "명품의 방향성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