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기자수첩]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 윤소진 기자
  • 승인 2021.09.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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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시절 흔히 말하던 '게임 폐인'이었다. PC게임이 붐을 일으켰던 시절, 대학 공강 시간마다 점심도 굶어가며 PC방에서 RPG 게임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는 데 열을 올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주말 하루는 PC방에서 날을 새기 일쑤였다.

게임이 폭력성과 질병의 원인이라고 이야기되던 시절이었다. 게임 중독, 게임 폐인 등 게임 관련한 내용이 사회 풍자나 비판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도 비일비재했다. 

이에 당시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방지하고자 미성년자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금지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미성년자는 자정이 되면 강제로 게임 플레이를 차단당할 수밖에 없었다.

법안의 취지는 학생들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시행 당시에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성년자가 게임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과도하게 국가에서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후 K-게임이 신 한류열풍으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국내 게임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서게 되면서 게임 셧다운제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라며 지속적인 폐지 논의가 있었다.

해당 법안의 위헌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헌법재판소는 게임 셧다운제를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또한, 지난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 2022년부터 발효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게임=질병'이라는 문제가 화두가 됐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중독'이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청소년의 게임 플레이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어떤 분야에 대한 과몰입이나 중독 현상을 상담하고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더 알맞은 해결방법일 것이다.

물론 과도한 게임 중독에 대한 심각성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제도의 '실효성'이다. 과연 게임으로 인해 청소년의 폭력성이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겠으며, 이를 강제적 셧다운제로써 적절히 해결해왔는가, 우리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제도의 혼용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는 주무 부처가 여성가족부로, 미성년자의 심야시간대 게임 이용을 강제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다. 이 강제적 셧다운제와 동시에 문화체육부에서도 게임 셧다운제가 운용되고 있다. 선택적 셧다운제라고 구분되고 있으며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 시간을 부모가 직접 설정하는 방식이다.

다수의 게임 이용자, 게임 유튜버 및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불필요한 제도의 혼용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를 계속해서 지적했다. 또한 게임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미성년자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라며, 게임 셧다운제 폐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셧다운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마인크래프트와 같이 오히려 건전한 장르의 게임이 성인 게임으로 분류, 차단되는 등 전 세계 이용자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드디어 지난 2011년 11월 시행된 이후 10년 만에 심야시간대 청소년의 게임 플레이를 제한했던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가' 폐지된다.

일각에서는 셧다운제 폐지로 인해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역시 게임 산업의 생태계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은 PC보다는 모바일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청소년의 모바일 게임 이용은 PC게임 계정 차단과 같이 물리적으로 제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향후 게임 셧다운제는 시간 선택제로 일원화된다. 게임시간 선택제는 18세 미만 본인과 부모 등 법정대리인이 요청하면 원하는 시간대로 이용 시간을 조절하는 제도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남아있는 선택적 셧다운제도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0시 이후에 부모의 아이디를 사용해서 게임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있는지 판단할 방법이 있었겠는가"라며 "마찬가지로 선택적 셧다운제도 존재 의미를 알 수 없는 유명무실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를 발표하면서 "미성년자 자녀의 자기 결정권과 가정 내 교육권을 존중한다"며 "자율적 방식으로 청소년의 건강한 게임 여가 문화가 장착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는 오히려 제도를 통해 미성년자와 가정의 교육권을 여전히 제한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다만 이번 개선 방안에 '게임이용지도서' 보급이나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확대 운영 등이 포함된 것은 긍정적이다. 관련 부처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시대를 역행한다고 비판 받는 셧다운제와 같은 제도를 유지하기보다는, 건전한 게임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중독 치유를 지원하는 등 보완 제도를 더욱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여가이고, 취미이고 문화이다. 게임에 몰두했던 그 시절은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되고, 좋은 인연이 되기도 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게임' 자체에 관한 인식이 전 세대에 올바르게 자리잡길 바래본다.

 

[비즈트리뷴=윤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