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태원의 실험, 성공해야 할 이유
[기자수첩] 최태원의 실험, 성공해야 할 이유
  • 이서련 기자
  • 승인 2020.11.0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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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외부 행보가 거침 없다. 최 회장은 지난 9월 '최태원식 사회적 가치축제'로 불리는 'SOVAC 2020'을 한 달가량에 걸쳐 마무리한 데 이어, 지난달 중순 판교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백신 간담회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같은달 21~23일에는 제주 CEO 세미나에 참여했고 30일엔 안동에서 열린 '21세기 인문가치포럼 개막식'에선 기조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야말로 쉴 틈 없는 광폭 행보다.

그가 던진 메시지는 일관됐다. 기업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재무성과 중심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업 가치, 즉 공익적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 작년에는 '사회적 일원으로서의 기업'을 강조했다면, 이번 10월 마지막 강연에선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 이상의 '공감'과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 힘을 줬다. 또 이는 더이상 선택 사항이 아닌, 새로운 규칙에 가깝다며 무게를 더했다.

단순한 언급에 그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이를 뒷받침하듯 SK그룹은 2일부터 SK(주), SKT, SK하이닉스를 포함한 8개사의 한국 RE100위원회 가입신청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다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가속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최 회장의 행보가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강조했던 '사회공헌' 철학을 그대로 이어 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부자(父子)가 각각 추구하는 개념은 다소 차이가 있다. 최종현 선대 회장의 '사회 공헌' 개념이 단순히 기업이 생산한 경제적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면,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 가치 창출'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념으로 기업이 자사의 역량을 통해 직접 환경오염, 청년실업 같은 사회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는 것이다. 즉 기업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딥체인지)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ㅣSK
최태원 SK그룹 회장ㅣSK

또 하나. 부친의 경영 철학이 최태원 회장에게 모티브를 줬다면, 최 회장이 가진 특유의 추진력도 그룹이 새 변화의 급류를 탈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즉 확신이 서면 뚝심으로 바로 실행해나가는 그의 성향이 탁상공론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임원단이 반대했던 SK하이닉스 M&A의 경우, 그의 뚝심이 빛을 발한 사례다. 당시 미래가 불투명한 반도체 사업에 최 회장은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 SK하이닉스는 모두가 인정하는 그룹의 대표 '효자' 계열사다. 그 외에도 SK실트론 등 M&A 승부의 역사는 이어져 왔고, 최근 10조원이 넘는 규모의 인텔 메모리 사업부 인수 역시 큰 화제가 됐다. 모두 '승부사' M&A 최태원의 통큰 선택이었다.

최 회장이 다른 방면으로 강력히 밀고 있는 '사회적 가치' 실험 역시 성공한다면, 가히 재계 '패러다임의 선구자'라 할 만할 것이다. 국내에서 이처럼 공적 가치를 내세우는 기업이 전무했을뿐더러, 성공한 사례도 없기에 차라리 모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일부 공기업들과 중견기업에서 SK의 행보를 벤치마킹하고 있을 정도로 최 회장은 경제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사다. 최근 이러한 적극 행보에 재계에서는 차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최 회장이 유력하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SK 역시 에너지·화학·통신·건설·반도체 등 대한민국 전반에 걸친 대규모 기업집단인데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사회적 가치 측정 표준화를 위한 글로벌 기업 연합체 VBA(Value Balancing Alliance)의 부회장국으로 선정되는 등 글로벌 영향력도 갖고 있다. 그만큼 인간 최태원이 가진 영향력은 크다.

'이제 기업이 사회를 위해 일하겠다'는 최태원의 화두. 이 실험의 성공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는 거리가 멀다'는 한국 재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하는 것을 감히 기대해본다. 그렇게 되면, 'M&A 승부사'로 불리는 최태원의 수식어 역시 훗날 '사회적 경제의 선구자'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비즈트리뷴=이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