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고 워라밸 '국회의원'
[기자수첩] 최고 워라밸 '국회의원'
  • 구남영 기자
  • 승인 2020.10.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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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입법부이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이에요, 그래서 국민은 국가의 일에 참여하는 국회 의원을 뽑는답니다."

초등 사회 용어사전에 나와있는 국회의원 설명 문구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에겐 최고의 혜택도 주어진다.  의원 1인당 연간 1억 5000만 원이 넘는 세비를 받는다. 일반 서민들 연봉에 해당하는 월급 수준이다. 또 의원 1인당 4급 보좌관 2명과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등 8명의 보좌진을 두고, 인턴도 2명까지 둘 수 있다.

초등 사회 용어사전에서도 알려주듯 국민의 세금으로 상당한 월급을 받는 국회의원은 국민이 고용주이자 국회의원은 공무원 근로자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라는 근로자는 근무태만에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최고의 워라밸이다.  그런만큼 이들의  근무태만은 매번 논란의 대상이다.

<사진제공=커리어넷 주니어 직업정보>

더불어민주당은 2020 국감의 대표 문구로 "민생 더하기, 국감을 국감답게"를 내걸었다. 그러나 이를 비웃듯 22일 국정감사에서는 감사 주제보다 국회의원의 '참석태도'가 화두가 됐다. 

이날 더불어 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종합감사 자리에 참석한 가운데 다른 의원의 질의가 진행되던 중 강 의원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장면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강 의원은 3년 전인 2017년 10월 25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당시 서울시 국감에서도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던 중 언론 카메라에 걸린 바 있다. 

근무태만인 국회의원은 강 의원 뿐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국내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일하는 국회의원에게 상을 주는 ‘대한민국 헌정대상’, '대한민국 의정대상' 이라는 시상식까지 있다. 특히, 회의 안 하면 세비를 삭감하는 '일하는 국회법' 까지 발의 됐지만 가결됐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인 염태영 수원시장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21대 국회 우리 민주당의 1호 당론인 ‘일하는 국회법’엔 상시 국감 제도화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그리고 국회의원 산하 윤리조사위원회 신설 및 윤리특위 의결건 본회의 자동부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며 “일하는 국회법의 조속 통과를 촉구합니다. ‘국감 무용론’이 내년에도 반복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연한 이치인 '무노동, 무임금'은 왜 국회의원에게만 적용되지 않아 매번 논란의 대상인걸까. 

지난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의 의원들의 '직무유기 역사' 를 되짚어 보자.  

19대 국회에서는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단 1건도 통과시키지 못한 의원이 8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2012년 초선 배지를 달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현 문재인 대통령 조차 4년간 대표발의한 법안이 3건밖에 되지 않았다. 이어 2014년에도 새누리당 홍철호·정미경 의원이 법안을 각각 11개, 21개씩 대표발의했지만 통과율은 0%였다. 

그해 2014년 9월에는 자유청년연합, 새마음포럼 등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이 주요 민생법안을 방치한 국회의원 300명 전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례도 있다. 

이들 단체는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세월호특별법을 명분으로 최근 3개월 동안 단 1건의 법률도 통과시키지 않았고, 국회의원의 본분인 법률 심사 및 통과를 거부하고 있다”며 “공무원인 국회의원의 중대한 직무유기로, 국가를 수렁에 몰아넣고 있는 이들 전원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어 “19대 국회의원들이 3개월간 약 11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세비를 받는 동안 각종 민생 안정에 필요한 법안들이 내팽개쳐졌다”면서 “민간 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무단 결근하거나 맡은 업무에 태만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해고를 당하는데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국회도 여야의 치고 받는 싸움으로 얼룩져 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이었다. 이에 20대 국회의 입법 성적표도 낙제점을 평가 받았다. 

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된 2016년 5월 30일부터 2020년 4월 20일까지 4년간 발의된 각종 법안은 모두 2만 4081건이다. 이 가운데 총 8819건이 처리돼 법안 반영률이 36.6%에 그쳤다. 무려 1만 5000여 건의 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것이다. 

한 시민단체가 지난 2018년 국회 본회의의 재석률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의원의 평균 출석률은 88%에 달했지만 본회의 끝까지  자리를 지킨 비율은 66%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석 수당은 받아갔다. 

해당 수치는 앞선 19대 국회(1만 7822건 발의, 7429건 반영, 반영률 42%)와 18대 국회(1만 3913건 발의, 6178건 반영, 반영률 44%), 17대 국회(7458건 발의, 3766건 반영, 반영률 50%), 16대 국회(2507건 발의, 1579건 반영, 반영률 63%) 등과 비교했을 때 발의 및 처리 법안 건수는 많지만 반영률이 압도적으로 적다. 직무유기 수준이다. 

이 같은 직무유기는 결국 화재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회까지 놓쳐버렸다. 

지난 2018년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는 수많은 소중한 생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에 단 '15분' 만에 소방기본법 개정안 등 소방안전 관련 법안 3건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그러나 이날 통과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2016년 11월 발의돼 1년 넘게 상임위에 묶여 있었고 법안 발의 후 상임위 상정까지 14개월이 걸렸다. 

이렇게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 또한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떠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대 국회의원들의 이번 국정감사를 지켜보면서 변한 것은 없어보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는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고 안줏거리다. 

국민의힘은 22일 “민주당이 이번 국감에 임하는 자세를 여실히 드러냈다. 176석을 가졌다며 국감을 우습게 보고, 국감장을 게임이나 하는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과거 민주당에서는 최재성 정무수석이 의원 시절 당 회의 도중 게임을 하다가 빈축을 산 바도 있다. 대체 국회를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비즈트리뷴=구남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