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은행들, 키코 통보시한 앞두고 '고심'
'진퇴양난' 은행들, 키코 통보시한 앞두고 '고심'
  • 김현경 기자
  • 승인 2020.03.05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키코 분쟁조정안 수락 여부 통보시한 D-1
우리은행, 유일하게 배상액 지급 완료
5개 은행들, '배임죄' 소지로 결정 못해

키코(KIKO) 분쟁조정안 수락 여부 통보시한을 하루 앞두고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소멸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금융당국의 권고를 무작정 거부하기도 어려워서다.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외환파생상품 키코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김현경 기자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외환파생상품 키코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김현경 기자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 등 5개 은행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키코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은행들은 오는 6일까지 조정안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

앞서 지난해 12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 등 6개 은행이 키코 피해기업 4곳에 총 256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로 은행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은행이 기업 외화를 시세보다 싸게 사들이는 구조의 외환파생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은 큰 손실을 보게 된다.

2005년 중반부터 은행에서 판매된 키코는 환율에 민감한 수출 중소기업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치솟으면서 키코 가입 기업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당시 키코 사태로 738개 기업이 3조2247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

분조위는 키코 판매 은행들이 기업들과 계약을 체결할 때 외화유입액 예상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과도한 규모의 환헤지를 권유했다고 봤다. 또 무제한 손실 가능성 등 리스크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은행별로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KDB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 총 256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현재까지 배상을 결정한 곳은 우리은행 뿐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월 이사회를 통해 재영솔루텍, 일성하이스코 등 피해기업 2곳에 42억원을 배상하는 내용의 분쟁조정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뒤 지난달 28일 배상금 지급을 완료했다.

반면, 다른 은행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키코 사태는 이미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한(10년)을 넘겨 법 적용이 어렵다. 소멸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 은행이 임의로 배상을 결정할 경우 배임죄 소지가 있다는 게 은행권의 입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배임 문제가 없다는 로펌 자문을 받았다고 하는데 실제와는 또 다를 수 있는 거고 그런 리스크까지 모두 감수하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이미 대법원 판례 거쳐서 결과까지 나온 사안에 다시 배상을 한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