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명퇴' 문제, 국책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권 '명퇴' 문제, 국책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 김현경 기자
  • 승인 2020.02.2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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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노사정 간담회...국책은행 명예퇴직금 제도 개선 논의
기은·산은·수은, 올해 임피 대상자만 1027명
금융공기업도 '45% 가이드라인' 적용...명퇴 기피 '심화'

정부와 국책은행 노사가 국책은행 명예퇴직금 제도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명퇴금이 턱없이 적어 명퇴 기피 현상을 불러일으킨 국책은행의 현 제도는 업무·비용 비효율화와 인사적체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가 시급한 사안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이는 국책은행 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공기업들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이번 논의가 금융권 명퇴제를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KDB산업은행 사옥 전경/사진제공=KDB산업은행
KDB산업은행 사옥 전경/사진제공=KDB산업은행

20일 국책은행에 따르면 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 대표와 각 은행 노조위원장,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인근 식당에서 열린 오찬을 겸한 두 번째 노사정 간담회에 참석했다.

간담회에서는 지난해 11월 열린 1차 간담회 때와 마찬가지로 의미있는 결론을 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노사는 앞서 1차 노사정 간담회를 통해 명퇴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한 바 있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논의를 하거나 진전이 뚜렷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은행별로 관련 현안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정도였다"며 "정부 관계자분들도 내용을 듣고 신중하게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냈고, 일단 저희는 희망퇴직이라는 이슈를 갖고 간담회가 이어지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책은행 노사는 명퇴 활성화를 위해 명퇴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책은행은 명퇴금을 임금피크제에서 받을 수 있는 총 임금의 45% 이내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고 있다. 즉, 명퇴금이 임피제를 지내면서 받을 수 있는 임금보다 현저히 적어 명퇴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노사의 주장이다.

'45% 가이드라인'은 임피제 임금의 약 90~100%를 명퇴금으로 지급하는 시중은행들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에서는 특별퇴직을 하면 임피 4년 동안 받을 임금을 한 번에 땡겨서 받게된다고 보면 된다"며 "복지를 조금 더 받고 안 받고의 차이 정도로 비슷하기 때문에 희망퇴직을 기피하는 현상은 특별히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책은행의 상황은 시중은행과 다르다. 특히, 명퇴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국책은행의 인력운용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임피제 대상자는 높은 임금을 받는 관리자급 직책이다. 임금은 높지만, 실무급 직무 수행이 사실상 어렵다는 뜻이다.

임피제 적용 대상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점도 은행에 부담이다. 퇴직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신입행원 채용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 산업은행의 임피제 대상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274명으로, 전체 임직원수(3785명)의 7.2%에 해당한다. 업계 관측에 따르면 이 비율은 오는 2022년 약 14%(531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업은행의 임피제 대상자는 지난해 말 510명(3.8%)에서 올해 말 671명(5%)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오는 2023년 임피제 대상 추정치는 1027명(7.6%)이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38명(3.6%)에서 오는 2022년까지 70명(6.7%)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명무실한 명퇴제로 국책은행의 인력적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책은행에만 명퇴금을 높여줄 경우 다른 공공기관도 같은 요구를 할 수 있어서다.

실제 정부의 주장대로 이번 명퇴제 문제는 비단 국책은행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45%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다른 금융공기업들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문제다. 오히려 임피제 해당 직원 비율은 20일 기준 신용보증기금 10%, 기술보증기금 10%, 주택금융공사 4.3% 등으로 국책은행보다 높았다.

A 금융공기업의 한 직원은 "다른 금융공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는데, 45%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 보니 보통은 임피 임기까지 다 채우고 나가지 특별퇴직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귀띔했다.

특히, 금융공기업의 경우 국책은행보다 규모가 작아 인사적체에 따른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핵심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 따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형평성을 이유로 국책은행의 임피제 문제를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관련 논의를 금융공기업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공기업의 노조위원장은 "사실 저희 같은 준정부기관은 국책은행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며 "임피제 비중도 훨씬 크고, 절대적인 직원수도 은행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지금 인력구조가 완전히 기형적으로 돼버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요한 건 기관이 제 할일을 못해서 대국민 서비스 질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는 건데, 지금 저희 기업 같은 경우 한 사람이 500~600개 업체를 담당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국책은행 노사정 간담회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준정부기관은 더 심각한 상황이란 걸 얘기해달라고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