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알권리’와 ‘인권보호’ 사이의 불협화음
[기자수첩] ‘알권리’와 ‘인권보호’ 사이의 불협화음
  • 윤소진 기자
  • 승인 2020.02.0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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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일) 새벽에 한 언론이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공소장 전문을 공개했다. 바로 전날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으로 세간이 떠들썩했으나, 보란 듯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다는 이유로 단독보도를 내놓았다.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직접 해명에 나섰다. 추 장관은 공소장 공개가 인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관행이었다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절차에 따라 공소사실 요지를 담은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이번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법무부 규정은 형사사건 관계인의 인권보호와 무죄추정의 원칙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혐의사실 등 사건 정보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추 장관과 법무부는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국회 요구에 법무부가 제출을 거부한 사례가 전무했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도 공소장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각종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도 ‘공소장 비공개 결정’은 헌법과 국회법 등을 위반한 조치이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보자는 행태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공소장 비공개’를 두고 사람들은 아직까지 갑론을박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와 개인의 권리 모두 보호해야 할 헌법상 기본권임은 분명하다.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찬반 논쟁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계속됐다.

지난해 ‘조국 사태’에서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언론의 과도한 보도 경쟁과 사생활 침해 수준의 가족 보도로 인해 인권침해 문제가 다시금 제기됐고, 이후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다.

범죄피의자의 신상 공개도 마찬가지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흉악범의 신상은 수사기관에 의해 초기부터 공개되곤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인권 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범죄피의자의 인권침해가 논란이 됐다. 이후 기소 전 피의자에게 모자와 마스크를 씌우는 등 최대한 신상을 비공개로 처리하는 관행이 생겨났다. 해외언론을 예로 들며 범죄자보다 언론에 노출되는 '경찰의 얼굴에도 모자이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2010년부터 여성가족부와 법무부가 공동운영해온 ‘성범죄자알림e’에 접속하면 내 주변의 성범죄자를 한번에 찾아볼 수도 있다. 재발위험이 높은 성범죄의 특성상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해 재범을 막고 추가 피해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수사기관의 공개소환(포토라인)이 전면 폐지됐다. 인권에 의한 국민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개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들이 마련되고, 또 정착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공소장 공개 제도’도 같은 맥락에서 참여정부 시절 도입된 제도다.

헌법재판소는 ‘혐연권 vs 흡연권’ 사례에서 사생활의 자유(흡연권)보다 생명·신체의 자유(혐연권)가 더 상위가치의 기본권이라고 판단하고 혐연권의 손을 들어주었다. 반면 ‘양심적 병역 거부’ 사례에서는 공공의 이익인 병역의무보다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생명권과 같은 상위 가치의 기본권이 다른 기본권과 충돌하는 경우 그를 먼저 보장하고, 상하를 가늠할 수 없는 기본권끼리 충돌하는 경우에는 개별적 사안에서 공공의 이익, 사안의 중대성, 대안식 해결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각 기본권이 가장 조화롭게 작용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최근 문제 되는 국민의 알권리와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는 모두 무엇이 더 중요하다 따질 수 없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흉악범죄자의 경우에서는 범죄예방이라는 공공의 이익이, 포토라인 폐지에서는 개인의 권리보호가 우선된 것처럼 13인의 공소장 공개는 과연 무엇을 위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생각컨대, 기소가 이뤄진 후 피고인의 명단이 언론에 공개됐고, 이미 대표적 혐의사실도 노출된 이상 법무부의 공소장 전문 비공개 결정은 실효성을 잃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잘못된 관행이라는 변명만으로는 국민을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공소장 내용이 무엇이냐가 아니게 됐다. 추 장관이 지적한 잘못된 관행이 왜 청와대를 겨냥한 이 사건부터 적용됐냐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적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법무부는 국민이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오늘 공소장 전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구체적인 공소사실이 상세하게 드러났다. 국민의 알권리는 이미 충족된 것이다. 이제 조화로운 해결을 위해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등의 보호가 숙제로 남았다. 검찰의 기소만으로 그 대상이 '범죄자'라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검찰의 공소장에 명시된 사실은 아직 ‘혐의’일 뿐이라는 것을.

[비즈트리뷴=윤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