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예탁결제원 '낙하산 인사' 강행
[기자수첩] 예탁결제원 '낙하산 인사' 강행
  • 이기정 기자
  • 승인 2020.01.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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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예탁결제원도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를 막지 못했다.

사옥 앞에서 벌였던 시위도,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해 결심한 노조위원장의 직접 출마도 무의미했다.

예탁결제원은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명호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사장으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에서 승인만 하면 예탁결제원의 22대 수장은 이명호 위원이 된다.

이번 예탁결제원 사장 공모에는 이명호 위원 외에도 제해문 예탁결제원 노조위원장과 전직 증권사 대표 등 5명이 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제 위원장은 재무부 출신을 일컫는 ‘모피아’ 인사를 막기위해 노조위원장 최초로 직접 출마에 나섰다.

예탁결제원 사장직은 전통적으로 관료 출신 인사들의 무대였다. 유재훈 전임 사장은 행정고시 26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를 거친 인물이고, 임기가 만료된 이병래 사장도 마찬가지로 행정고시 32회를 거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출신이다. 이번에 내정된 이 위원도 행정고시 33회 출신으로 금융위 자본시장과장, 자본시장조사심의관 등을 지냈다.

예탁결제원 사장직을 모피아 출신끼리 물려주는 듯한 행태에 예탁결제원 노조와 시민단체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현수막을 내걸고 ‘낙하산 반대’ 시위를 진행하는 한편, 이 위원이 이대로 사장직에 선출되면 공개토론회 요구와 함께 출근 저지 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도 지난 28일 규탄 성명을 통해 낙하산 인사를 전면으로 비판했다.

사실 노조와 시민단체의 반발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과정에서부터 불신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모든 선거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사실상 후임 사장을 내정 후 요식행위로 공모 절차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또 실제 사장 면접을 다녀온 한 지원자도 “이미 최종 선정자를 골라놓고 면접을 진행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며 허탈해했다.

관료 출신 사장들이 예탁결제원 내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점도 노조와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이유다. 실제 관료 출신 사장들은 내부 사정에 취약할뿐더러 안정적인 경영을 선호해 내부적인 문제 해결에는 소홀한 태도를 보였다. 제 노조위원장도 사장 출마 당시 직원들에게 이러한 점을 꼬집으며 “이병래 사장이 복수전무제, 노동이사제, 종합연수원 건립 등 내부 핵심사안에 깊은 고민을 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사장 공모에서 예탁결제원은 전형적인 깜깜이식 인사를 강행했다. 노조가 더욱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낙하산 인사로 골머리를 앓던 IBK기업은행이 지난 28일 노사간 타협을 통해 문제를 일단락한 가운데, 예탁결제원도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노사간 갈등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비즈트리뷴=이기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