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라임사태, '가해자' 은행의 '피해자' 코스프레
[기자수첩] 라임사태, '가해자' 은행의 '피해자' 코스프레
  • 김현경 기자
  • 승인 2020.01.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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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행권이 라임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은행들이 앞다퉈 판매했던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일부가 부실하게 운용됐던 것이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약 1조5000억원에 달하는 펀드가 환매중단돼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까지 환매중단된 라임펀드 1조5587억원 중 3259억원을 우리은행이 판매했고, 신한금융투자 1249억원, KEB하나은행이 959억원을 팔아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이번 라임사태는 지난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원금 손실 사태 직후 발생한 일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은행들은 펀드 판매를 대리했을 뿐 라임운용의 위법행위와 부실운용 행태를 알지 못했다며 오히려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특히, 라임펀드는 공시의무가 없는 사모펀드인 만큼 은행들이 펀드의 운영 현황과 방식에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고위험 상품을 철저한 사전검증 없이 안일하게 판매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사모펀드 금지는 곧잘 금융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상품인지 알 수 없었다면 판매하지 않는 것이 맞다. 1금융권인 은행이 제대로된 확인 절차 없이 부실한 펀드를 판매할 거라고 생각할 투자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문제가 된 라임펀드를 판매하지 않은 한 은행의 관계자는 "우리도 라임자산운용에서 의뢰가 들어왔었는데 내부적으로 살펴보니 정보도 너무 없었고,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어서 관련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전달했으나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라임은 맨 처음 기사가 나기 전부터 만기 미스매칭이 과도해서 업계에 우려 섞인 시각들이 좀 있었다"며 "만기 미스매칭이라고 하면 예를 들어서 펀드는 1년짜리를 만들어 놓고, 안에는 3년짜리 대출을 담아서 무조건 3번의 투자자 교체가 발생하게 되는, 그런 걸 말하는데 결국 유동성이나 환매불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리스크가 높은 상품이었음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것 또한 리스크관리 문제로 볼 수 있다.

사모펀드는 공시의무가 없다. 하지만 이번 라임사태 이후 은행들이 같은 이유를 대며 고위험 사모펀드를 무작정 판매하기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보다 철저한 사전검증 제도의 안착과 판매처에 대한 강도 높은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최근 은행들은 투자상품 불완전판매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고객자산 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개편안에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상품선정위원회 도입, PB 평가지표(KPI) 고객수익률 배점 상향, 통합리스크관리 체계 구축, 투자상품 리콜제 도입 등이 포함됐다.

일단, 투자상품 선정·판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만, 이번 자산관리체계 개편안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도록 은행권의 강도 높은 자성도 필요하다.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