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의 ‘준법감시’ 실험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기자수첩] 삼성의 ‘준법감시’ 실험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 강필성 기자
  • 승인 2020.01.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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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외부감시 기관인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삼성그룹을 외부자의 눈으로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양형을 위해 만들어진 ‘바람막이’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엇갈리는 시선들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지금까지 삼성그룹의 변신은 주로 현행법과의 문제가 발생할 때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본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번 준법감시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혐의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거론됐다는 점에서 그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이 부회장의 첫 공판에서 삼성그룹 내부 준법감시제도의 마련을 당부한 바 있다.

이미 2006년에는 준법감시위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 출범됐다 사라졌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준법감시위도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처럼 별 다른 활동 없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 김지형 전 대법관도 준법감시위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삼성 측 요구를 처음에는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삼성의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며 “총수 형사재판에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에 지나지 않는가 생각했다”고 거절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의 이번 실험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삼성그룹은 그 어느 때보다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뇌물·횡령 혐의로 이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으며 삼성바이오리직스의 증거인멸,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와해 사건 등에서 줄줄이 유죄를 선고 받는 상황.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굴지의 삼성그룹에게 ‘준법’이 가장 큰 리스크가 되고 있는 셈이다. 변화의 필요성은 삼성그룹이 가장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준법감시위의 출범이 요식행위에 그친다면 삼성그룹은 다시는 회복하기 힘든 불신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삼성그룹의 실험은 그 타이밍에 대한 의구심과 별개로 막중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장 제안을 수락한 배경에 대해 “무엇이 계기가 됐든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신호”라며 “삼성이 변화를 택한 타이밍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뤄낼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시기와 시점이 좋지 않지만 의심을 두려워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의심을 씻어내는 것 역시 앞으로 삼성과 준법감시위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