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2000억원대 배상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은행권
키코 2000억원대 배상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은행권
  • 김현경 기자
  • 승인 2019.12.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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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법률자문 결과 배임문제 없다" vs 은행권 "자문은 자문일 뿐"

은행권이 약 2000억원대에 달하는 키코(통화옵션계약) 배상액을 둘러싸고 난감한 기색이다. 소멸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금융당국의 결정을 무작정 거부하기도 어려워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감원은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추가 분쟁조정을 위해 은행 중심의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여러 은행과 동시에 키코 계약을 맺은 만큼 은행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조정 수용 가능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양측 조정은 앞서 은행들이 키코 피해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해야 한다는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를 토대로 한다. 분조위는 키코 판매 은행들이 기업들과 계약을 체결할 때 과도한 규모의 환위험헤지를 권유하거나 무제한 손실 가능성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총 256억원 규모의 배상액을 기업들에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KDB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 총 256억원이다.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외환파생상품 키코 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결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김현경 기자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외환파생상품 키코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김현경 기자

문제는 추가 분쟁조정 대상 기업만 약 150곳에 달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계산에 따르면 추가 배상액은 약 2000억원대 초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상 은행들은 조심스러운 눈치다. 배상안을 면밀히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수용하겠다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이는 앞서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다수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던 DLF 사태에서 은행들은 금감원의 조정안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은행들은 키코가 DLF와 달리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고, 불공정 계약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안인 만큼 섣불리 배상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2013년 대법원은 키코 사태와 관련해 은행의 불완전판매만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계약 자체의 불공정성이나 사기성은 불인정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에 따라 기업들에 배상을 했던 터라 다시 배상액을 지급하는 것이 자칫 선례가 될 수 있어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10년이 더 된, 소멸시효가 이미 끝난 사건이고 대법원 판례에 결과가 나와 있기 때문에 지금 금액의 과중이 문제가 아니라 배상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상태"라며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사에 대한 검사권을 쥔 금감원의 결정을 무작정 거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도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법률자문 결과, 그동안 은행들이 키코 배상안을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로 제시했던 '배임 소지'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없다며 못 박은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건에 대한 배임 이슈 관련해서만 네 군데 로펌에서 법률자문을 받았는데 다 동일하게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배임 관련) 자문은 자문일 뿐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배상을) 하기엔 부담스러운 게 있다"며 "키코는 특히나 원장께서 관심을 크게 두고 있었기 때문에 참 어려운 문제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답에 많은 의미가 담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