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난도 투자상품 판단' 소비자에게 맡기겠다는 당국과 헷갈리는 은행
[기자수첩] '고난도 투자상품 판단' 소비자에게 맡기겠다는 당국과 헷갈리는 은행
  • 김현경 기자
  • 승인 2019.11.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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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무리 복잡한 상품이어도 소비자들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만 잘하면 결국 괜찮다는 말인가요?"

지난 14일 은행의 사모펀드 판매 제한을 골자로 한 DLF(파생결합상품) 종합대책안이 발표된 후 은행 관계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이다.

앞으로 고난도(고위험) 금융투자상품을 팔 수 없게 됐는데, 정작 어떤 상품이 고난도 상품인지를 판단할 기준이 모호해 혼란스럽다는 얘기였다.

2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란 DLF 등 파생상품이 내재해 투자자들이 가치평가방법 등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고, 최대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인 상품이다.

판매하는 금융투자상품이 고난도 상품인지는 금융사에서 1차로 판단하면 된다. 금융사가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 금융위원회가 별도 판정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 판정위원회는 온전히 소비자로만 구성된다.

즉, 파생상품이 들어가 있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인 상품들 가운데 판정위원회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이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은 이렇게 고난도 상품에 대한 판단을 온전히 소비자에게 맡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금융투자 지식 유무에 따라 소비자들의 상품 이해도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어떤 소비자를 기준으로 상품을 설명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만 잘 한다면 고난도 상품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금융사에서 고난도 상품인지를 1차적으로 판단하기에도 부담이다. 시스템이 제대로 안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DLF 사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이 온전히 금융사에 돌아올 수 있어서다.

결국 금융사들은 판정위원회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준이 모호한 탓에 오히려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업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이르면 다음 주 중 세부 방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대책안 발표 이후 업계 반발이 가장 심했던 사모펀드 판매 제한과 관련해서는 '큰 틀'이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20일 "은행들의 합리적인 지적에 대해선 듣겠지만 워낙 이번 사태의 파장이 컸던 만큼 큰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대책은 사모시장을 죽이려는 게 아니고 투자자는 보호하면서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방법을 금융위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업계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부분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단 기준 등 세부 방안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DLF 대책안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세부 기준을 마련할 때 은행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부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