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꽃길’ 대신 ‘위기’에 등장한 정의선 부회장
[기자수첩] ‘꽃길’ 대신 ‘위기’에 등장한 정의선 부회장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2.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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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지금까지 오너 3~4세의 경영권 전면 등장과는 분명 다릅니다. 기존 재계에서 차기 오너의 경영 전면 등장이 회사의 고성장기에 맞춰져 있는 ‘꽃길’이라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등장 시점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일 때죠.”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을 두고 남긴 재계 관계자의 평가다. 

사실 이 관계자의 말은 재계에서는 상식과도 같다. 차기 오너의 경영일선 등장 시점은 그룹이 고성장기를 맞이하거나 적어도 안정적일 때가 대부분이다. 경영능력에 대해 불필요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수년 전 재계 오너나 그 자제들이 등기임원 및 대표이사를 줄줄이 사임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법적,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해 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최근 현대차, 현대모비스의 대표이사로 올라서기로 한 정 부회장의 선택은 다른 그룹과는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현대차그룹이 빈말로라도 좋은 상황이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진=현대차그룹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최근 몇 년간 판매부진으로 실적이 급락하는 사상초유의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지난 2012년 8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2조4222억원까지 추락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10.0%에서 2.5%로 급감한 상황. 

앞으로도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기존 내연기관 중심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수소차로 빠르게 옮겨가는 패러다임전환을 겪으면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기술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투자 경쟁은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안고 있는 과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해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사들이며 경영권 분쟁을 시작한 것도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한 바 있다. 엘리엇이 발목을 잡았다.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원 수준의 배당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황.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지금 실적악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하면 미래 투자를 위한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시장 회복과 대규모 투자, 미래 기술개발, 엘리엇을 비롯한 주주 설득과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성공해야만 절박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 중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 시장 확보에 실패하면 미래성장을 위한 투자 여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미래 기술개발의 주도권을 놓치면 차세대 전기차·수소차 경쟁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주주를 설득해야 하는 지배구조개편의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모든 과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단 한번의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엄중한 시점이 됐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느끼는 부담감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향후 현대차그룹이 '반전'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이는 고스란히 정 부회장의 책임론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과연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위기에서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자산총액기준 재계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그렇기에 정 부회장의 성공여부는 곧 한국경제의 성패와도 맞닿아있는 셈이다.  ‘꽃길’ 대신 ‘가시밭길’의 무대에 등장한 정 부회장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해 낸  '성공한 CEO'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