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코드에 화답하는 국민연금?…재계 "경영간섭 우려"
정부의 코드에 화답하는 국민연금?…재계 "경영간섭 우려"
  • 이연춘
  • 승인 2019.01.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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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일각에선 "제도 취지·부작용 고려하면 과도"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는 '연금 사회주의"지적도

 

[비즈트리뷴=이연춘 기자] 한진칼 및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연금 사회주의 논란, 기업에 대한 경영간섭에 따른 투자 여력 악화와 사모펀드에 대한 간접 지원 문제점 등 다양한 문제점에도 불구, 기업들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밀어 붙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사흘 앞둔 29일 기금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가 재차 열린다. 예정에 없던 회의가 다시 열리면서 주주권 행사 반대 의견이 우세했던 첫 회의 결과가 뒤집히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수탁자책임위원회는 29일 비공개회의를 열어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에 관한 세부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23일 첫 회의를 연 지 6일 만이다. 앞선 회의에서는 수탁자책임위원 9명 가운데 2명만이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에 찬성했고, 한진칼에 대해서는 4명이 찬성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회의 당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의지를 밝힌 것과 수탁자책임위의 결론이 엇갈린 데 대해 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1일 기금위의 '뒤집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수탁자책임위 회의를 재개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위에서 기존 의견을 뒤집어 주면 다음 달 1일 열릴 기금위에서 문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주주권 행사 결론을 내리기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지난 23일 대한항공,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았던 1차 수탁위 회의 결과를 뒤집으려 의도로 보인다"며 "이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사실상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강행 의지 피력으로 분석된다"고 해석했다. 수탁위에서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반대라는 다수 의견이 내려졌음에도 불구, 기금위의 유권해석 요구 및 비공개 수탁위 회의 재 개최 등은 기금위의 '뒤집기'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문재인 대통령의 ‘스튜어드십 적극 행사’ 발언에 코드를 맞추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

아울러 비공개로 수탁위를 다시 여는 이유가 정부와 국민연금이 혹시 모를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민간(수탁위 위원들)에 책임을 넘기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지난 정권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총 당시 의결권 자문기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이 구속되거나 징계를 받은 사례를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수탁위 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식을 통해 얻은 단기 매매차익은 ▲2016년 123억원 ▲2017년 297억원 ▲2018년 49억원 등 총 469억원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그 기간 동안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했다면 3년간 손실이 469억원에 달한다.

실제 수탁위는 지난 회의에서 국민연금의 경영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최대 걸림돌 중 하나인 '10% 룰' 적용 여부와 근거 등 핵심 쟁점에 대해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중요한 쟁점에 대한 논의와 해법은 빠진 채 위원들에게 주주권 행사 여부와 범위에 대한 찬반 의견만 물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10% 룰'에 따르면 특정 주주가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면 '단순투자' 목적인지 '경영차여' 목적인지를 공시해야 한다. 단순투자 목적이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경영 참여' 목적이면 지분이 1주라도 변동되면 5거래일 이내 신고해야 하고, 6개월 내 단기매매차익을 해당 기업에 돌려줘야 한다. 내부정보 취득, 이용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1.68%와 한진칼 지분 7.34%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국민연금이 모든 기업에 경영간섭을 하기보단 문제가 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선별하는 것이 필요하단 주장한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기본 목적은 국민 노후 보장과 이를 위한 수익률 극대화"라며 "적극적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의지 표명은 이 같은 국민연금의 기본 목적조차 무시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금융위원회 유권해석을 통해 국민연금에게 10%룰을 예외적용하게 될 경우에 발생할 후 폭풍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정상적인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권해석이라는 '꼼수'를 통해 예외 규정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형평성 차원에서 다른 기관투자가들에게 예외 적용을 함께 허용할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 수익율 제고가 아닌 단기 투자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라는 설명이다.

정부와 국민연금의 아전인수격 움직임에 여론의 반응도 싸늘하다. "국민 세금인만큼 국민이 주주여야 한다" "국가에서 사기업 경영 참여는 연금 사회주의 비판 받을 수 밖에 없다", "연금손해가 천문학적인데, 기업 경영에 신경써서 되겠느냐"등 비판 적지않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이 노후를 위해 맡긴 돈이자 공적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돈을 이용해 오히려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행동"이라며 "정부가 연기금으로 사들인 지분을 통해 경영에 관여하면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고 '연금 사회주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