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트리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실업자서 바이오산업 리더로 '우뚝'
[핫트리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실업자서 바이오산업 리더로 '우뚝'
  • 전지현
  • 승인 2019.01.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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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누구나 다 아는 길이 아니라 처음가는 길을 택했다. 앞선 한 걸음 한걸음 발자국이 길이 됐다."
 
셀트리온그룹이 지난해 2월 발간한 사사에 담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말이다. 책 안에 담긴 서 회장의 여러 어록 중 이 한줄이 눈에 띈 것은 최근 그가 밝힌 은퇴 선언과 맞닿아 있어서다.
 

서 회장은 지난 4일 진행된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2020년 말 은퇴할 계획임을 선언했다.

 

2002년,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어 발자국으로 길을 만든지 17년. 서 회장은 그간의 세월이 고단했음을 술회하듯 창업자가 이끌 셀트리온 시한이 단 2년 남았음을 공표했다.

 
셀트리온이 시작하는 첫걸음에는 항상 서 회장이 선봉대에 있었다. 단 2명의 멤버와 미개척 분야에 도전할 때도, 15년간 유지해온 대표자리를 내놓고 돌연 '주재원' 직책으로 전세계 영업현장을 챙길 때도 셀트리온의 처음이 있는 곳에 서 회장이 있었다.
 
이제 남은 2년. 서 회장은 '1세대 셀트리온'이 9부 능선까지 왔다며 남은 작업으로 항체바이오의약품과 합성의약품을 양날개로 제품 개발부터 생산, 유통까지 책임지는 글로벌 종합바이오제약기업을 내세웠다. 종합적인 글로벌 바이오제약기업을 향한 셀트리온의 날개짓이 2년이면 충분하다는 셈법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미개척 분야를 향한 무모한 도전, 셀트리온의 모든 첫걸음에 선 서정진 회장
 
서 회장은 2002년 단 2명의 인력으로 셀트리온을 창업했다. 올해로 창립 17년에 돌입했지만, 서 회장이 셀트리온 전신인 '넥솔(Next Solution)'을 2000년 설립해 다양한 비즈니스 가능성을 타진하던 때부터 바이오의약품 생산 설비를 구축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던 시기까지의 3년을 포함하면 셀트리온은 올해 20년 성인이 됐다.
 

서 회장은 지금이야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계 리더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는 실제 생명공학분야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서 회장은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한뒤 1985년에는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했다. 이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자동차 분야에 발을 담근다.
 
갑작스런 대우그룹 해체가 서 회장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실업자 신세로 내몰리면서 서 회장이 셀트리온 역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1999년 12월31일 인천 연수구청 7층 벤처센터에 단 2명의 창업멤버들과 함께 넥솔을 설립했다.
 
서 회장이 생명공학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업 초기, 무작정 넘어간 미국 샌프란시스코행에서였다. 넥솔을 통해 다양한 사업 가능성을 찾던 서 회장은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만나겠다는 생각으로 약속도 없이 무작정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그리고 무모했던 서 회장의 발걸음은 기회가 되어 돌아왔다. 서 회장이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루크 블럼버스 스탠퍼드대학의 에이즈 연구소장이었던 토마스 메리건 교수 등 생명공학 분야 석학들과 만나 의견을 교류하다 '바이오시밀러'란 미개척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특히,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 특허만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서 회장은 샌프란시스코 현장에서 미래 사업으로 바이오시밀러 가치가 무한대로 치솟을 것을 예견했고, 미래 사업으로 '바이오시밀러'에 착안해 생명공학 사업을 전개하게 된다.
 
◆위탁받아 생산하던 셀트리온에서 바이오시밀러 선두주자 '우뚝'
 
서 회장은 사업 초기 CMO, 즉 남의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비즈니스를 영위해 왔다. 회사 설립 5년만인 2006년 CMO 사업을 통해 거둬들인 첫 수익은 15억원. 하지만 서 회장은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에이즈 백신개발 프로젝트 3상 임상시험이 모두 실패하는 등 시련을 겪으면서 2007년 본격적으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개발에 돌입한다.
 

바이오셀트리온의 첫 바이오시밀러는 램시마(자가면역질환치료제)다. 램시마가 임상시험을 종료하고 한국판매허가를 획득한 것은 2012년 7월.
 
서 회장은 설립 10년째가 되어서야 한국 식약청(KFDA)으로부터 글로벌 임상을 완료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제품허가를 획득, 국내 시판을 시작하게 됐다.
 
오랜 기간이 소요됐지만, 이후 서 회장의 셀트리온은 거침없이 뻗어갔다. 서 회장은 2012년 8월 한국에서 램시마를 첫 출시한 뒤 유럽을 포함해 세계 52개국가에서 램시마 허가를 신청했고, 2013년 유럽의약품청(EMA)로부터 램시마 허가를 획득한다.
 
이후 노르웨이, 캐나다, 일본, 터키 등 세계 각국에서 허가가 이어졌다. 2015년 램시마는 유럽에서 판매를 시작한지 단 9개월만에 처방 환자수가 6만명을 넘어서며 시장점유율 30%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2014년 1월 두번째 글로벌 임상시험을 완료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허쥬마(유방암치료제)와 2016년 11월 세번째 세번째 바이오시밀러인 트룩시마(혈액암치료제)가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허가를 받는데 성공한다.
 
특히 항암제 바이오시밀러 허쥬마 다른 질환에 사용하는 바이오시밀러보다 개발이 어렵고, 개발에 성공해 저렴하게 공급하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기회를 제공, 바이오시밀러 개발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다.
 
◆소박하고 진솔한 말투에 거침없고 직설적인 '행동파' 회장님
 
무모한 도전과 첫걸음에 망설임 없는 서 회장은 평소 성격이 투박하고 진솔해 말투 자체도 거침없고 직설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말 발생한 항공기 내 승무원 폭언·갑질 논란 역시 서 회장의 이 같은 말투로 인해 벌어진 오해라고 회사측이 시인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일이 안 풀리면 현장으로 나가 몸으로 부딪치며 실마리를 찾는 활동가적 성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 회장은 지난 4일 간담회장에서도 예고없이 발표에 나서 '깜짝 은퇴 발표'까지 속내를 여과없이 풀어냈고, 2015년 3월 갑작스레 전문경영인체제를 선언할만큼 소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성격이다.
 
반면, 서 회장의 '인본주의 경영'으로 인사이동이 심하기로 유명한 제약업계에서도 셀트리온은 직원을 절대 내치지 않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우성, 김형기 부회장은 창립때부터 현재까지 서회장의 옆을 지키고 있다.
 
서 회장이 15년간 유지했던 대표자리를 내려놓은 2015년 이후, 설립 초기부터 생산, 임상 및 허가 부문을 담당하고 램시마 유럽 허가를 진두지휘한 기우성 사장(현재 부회장)은 생산, 품질, 임상, 허가 부분을, 전략기획 및 재무 담당으로 국내외 투자유치를 이끈 김형기 사장(현재 부회장)이 경영관리, 재무, 연구개발을 맡고 있다.
 
'소유와 경영' 분리 선언 후 서 회장은 해외 사업에 전념해왔다. 경영체제 변화를 시작한 시기는 셀트리온이 자체 개발한 바이오시밀러가 잇따라 상업화에 성공한 시점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이때부터 서 회장은 미국 제넨텍, 암젠을 경쟁사로 글로벌 톱 바이오제약기업을 셀트리온의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서 회장은 지난 4일 진행된 신년간담회 자리에서 2020년이면 셀트리온그룹이 미국 제넨텍, 암젠과 더불어 글로벌 3대 바이오기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 회장은 “이미 항체 바이오의약품 기술력에서는 제넨텍과 암젠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제품 파이프라인도 우수하고, 임상 전략과 생산 능력도 월등해 직판 체제로 판매수수료까지 낮추면 완벽한 종합 바이오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이 해외 곳곳을 누비던 지난 3년간,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의 후속으로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와 '허쥬마'가 유럽(EU)과 미국에서 허가를 받았고, 램시마의 피하주사 제형인 '램시마SC'도 최근 유럽의약품청(EMA)에 판매 허가를 신청했다.
 
거침없는 서 회장의 행보에도 논란 거리는 남아 있다. 현재 셀트리온의 재고자산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으로 이어지는 '삼각구도'에 대한 역할 분배는 회사 안팎의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서 회장은 이를 염두한 듯 최근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에 대해 주주들의 뜻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유와 분배에 있어서도 실제 서 회장 일가가 셀트리온 곳곳에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벽한 분리작업으로 보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서 회장의 장남 서진석씨는 화장품 계열사 셀트리온스킨큐어 대표로, 차남은 셀트리온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동생 서정수 씨는 화학의약품 계열사인 셀트리온제약 대표, 부인 박경옥 여사는 셀트리온복지재단 이사장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