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방정책'으로 뜨는 러시아?…은행권 "가고 싶지만..."
'신북방정책'으로 뜨는 러시아?…은행권 "가고 싶지만..."
  • 김현경
  • 승인 2018.12.2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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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눈치에, "러시아 진출 현실적으로 어려워" 토로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 국내 시장 포화, 규제 강화 등으로 성장 한계에 부딪친 은행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곳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다. 젊은 인구구조와 저렴한 인건비로 성장 여력이 높은 데다 정부의 '신남방정책'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너도나도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현지 진출 은행들간 경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새로운 수익원 발굴 차원에서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은행들이 또 다시 시장 과포화 상태를 겪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진출 속도가 더딘 러시아가 새로운 금융시장 개척지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도 힘을 실어줬다. 정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향후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가스, 철도, 전력, 항만 등의 분야에서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은행이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제조업 등 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현지 진출이 동반돼야 한다. 현지에서는 외국계 은행으로서 리테일 영업이 어려운 만큼 기업대출 등에 주력하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질 경우 은행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또한 조성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은행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두곳이다. IBK기업은행도 지난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현지 시장 조사를 위한 사무소를 열였지만, 아직까지 영업을 시작한 단계는 아니다.
 
2008년 우리은행은 국내 은행 중 최초로 모스크바에 현지법인인 '러시아우리은행'을 설립했다. 이후 201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점과 2014년 블라디보스토크 사무소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014년 모스크바에 현지 법인을 오픈하고 현재까지 영업 중이다. 두 은행의 올해 3분기 기준 총자산 규모는 각각 2900억원, 2353억원으로 상대적으로 규모는 크지 않다.
 
국내 은행들에 대한 현지 반응도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러시아 중앙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자국 금융권 구조조정'이 국내 은행에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예전 IMF때 국내 부실 기업들이 다 정리됐던 것처럼 러시아도 부실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어 1년에 러시아 로컬은행들이 수십개씩 없어지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현지 기업들도 로컬은행보다는 안정적인 네임밸류와 신용등급을 갖고 있는 외국계 은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호적인 상황임에도 은행 관계자들은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에 적극 진출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제재에 대한 우려다. 미국이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친러시아 기류를 형성할 경우 미국이 국내 은행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은행에 추가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은행에 세컨더리 보이콧이 적용되면 해당 은행의 외국환 거래가 전면 중지돼 사실상 영업 자체가 어려워진다. 최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가 본격화된 뒤 국내 일부 시중은행들이 이란 유학생들의 은행 계좌를 폐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미국의 제재 같은 게 완화돼 러시아에도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다면 큰 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인 것은 맞다"면서도 "최근 미국이 이란에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은행들이 이란 유학생 은행 계좌를 폐쇄했던 것처럼 국내 은행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러시아와 관련돼 이름이 두드러지는 걸 굉장히 꺼리는 상황이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에 금융권 전문가들은 미국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정부와 은행의 해외 시장 다변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조언했다.

 

앞서 지난 10월 코트라(KOTRA)도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지속되고 있다"며 "신북방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우리 기업들은 서방제재에 따라 있을 수 있는 피해나 분쟁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사전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