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CEO에게 물었다] ② "장기 전략 짜고 싶다"…지지· 신뢰 필요
[증권사 CEO에게 물었다] ② "장기 전략 짜고 싶다"…지지· 신뢰 필요
  • 어예진
  • 승인 2018.12.18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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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나무도 기다려야 열매가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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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용지 기자>

 

스티브 잡스의 멘토이자 前 애플 수석부사장 제이 엘레엇이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애플의 미래를 우려한 이들에게 한 말이 있다. “월트 디즈니, 모리타 아키오, 그리고 데이비드 패커드와 빌 휴렛은 각각 디즈니와 소니, HP를 떠나기 전에 모두 자신의 기업을 매우 강력한 조직으로 자리 잡게 해뒀습니다. 물론 이 회사들은 그들이 떠난 후로도 제 궤도를 유지하며 계속 번성했죠. 스티브는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여러 기본 원칙들을 안정적으로 다져 놓았습니다. 따라서 애플은 이 구조와 운영 원칙들 덕분에 계속해서 선두를 지키고 번영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서 ‘아이리더십’ 中). 
제이 엘리엇이 언급한 이들이 ‘창업자’라는 특성을 떠나 CEO(최고경영자)로서 직접 지휘봉을 잡은 기간은 다음과 같다. 스티브잡스(애플) 23년, 월트디즈니(월트디즈니)15년, 모리타 아키오(소니) 18년, 빌 휴렛·데이비드 패커드(HP) 55년.
 
비즈트리뷴은 증권업계에 관행처럼 자리잡은 CEO의 짧은 임기와 사업 성장에 대한 상관관계에 초점을 두고 기획 기사를 연재 중이다. 이와 함께 ‘전·현직 증권사 CEO 11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속마음을 들어봤다. 솔직한 의견과 답변의 민감성을 고려해 익명으로 진행했다.
 
[비즈트리뷴=어예진 기자] 지난 기사 ①편에서 증권사 CEO들은 2~3년의 기본 임기에 대해 11명 중 10명이 ‘짧다’는 의견을 같이 했다.
   
그렇다면, CEO의 잦은 교체로 인한 회사(업계)의 가장 큰 한계는 무엇일까. 전·현직 CEO들이 피부로 느끼는 내용을 자필로 직접 받아봤다.

◆ “단기 실적 치중, 장기 계획은 무리”  

 

전·현직 CEO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지만, 응답자 11명 전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다. 바로 '단기 업적 치중으로 인한 중장기적 성장 계획의 부재와 한계'다.


이 대답은 시험 성적에만 연연하는, 그러나 정작 꿈은 없는 한국 청소년들의 대답이 아니다. 글로벌을 향해, 초대형 IB를 목표로 성장하겠다고 공언하는 국내 증권사들의 진짜 현실이자 속마음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전력을 다하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미래’에 투자할 여력과 시간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중장기적인 투자의 어려움’ , ‘중장기적 경영전략 추진의 한계’,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 불가’, ‘잠재 성장 역량 확대 어려움’, ‘목표 ROE 제시 등 장기적 자본운용(Capital Management)의 부재’ 등을 꼽았다.

‘체질 변경의 어려움’, ‘임직원 간의 소통 체계’, ‘일관된 회사 정책 부재', 'CEO 변경에 따른 잦은 정책 변화’, ‘사업 지속가능성 우려와 조직문화 부재’ 등도 최고경영자들이 자리에서 느끼는 한계에 해당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답변자는 “사업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중장기적인 투자나 사업을 진행할 때는 '선투자'가 이뤄진다. 설비가 됐건, 인력이 됐건 기본적으로 '마이너스 플랜'을 짜야 한다. 사안에 따라 1년 적자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상황은 임기 내 실적에 예민한 CEO로서는 '위험 감수(Risk Taking)'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해야 하는 중장기적 투자와 경영이 증권사 CEO에게는 남들보다 수십 번은 더 고민하고 넘어서야 하는 ‘역경’인 셈이다.
 
◆ 믿어줄 사람은 이사회와 직원, 그리고 투자자
 
당장 내일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이 한 몸 희생해 회사를 모험에 들게 하는 CEO는 없을 것이다. 지주는,오너는 또는 이사회는 어지간해서는 믿고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존 플래너리(John L. Flannery) 前 CEO는 갑작스럽게 경질된 사례로 대표적이다. 30년간 GE에서 일해온 잔뼈가 굵은 인물인 그는 최고경영자 취임 직후 성장 촉진과 주주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전환하기로 한다. 저조한 실적의 사업부는 매각하고 핵심 사업을 추려 회사를 축소하는 등 과감한 변화를 진행하고 있던 중 그는 취임 14개월만에 경질된다. GE의 주가가 폭락하기 전에 결과를 내지 못했고, 이사회 역시 그 과정에서 인내심을 잃었다. 투자자를 설득하고, 이사회의 신뢰를 유지하며 회사를 변화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금융투자업은 특히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내가 필요한 산업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증권사에서 장기 연임 CEO들이 속속 나타나는 모습이다. 금융지주 계열이나 보수 증권사들은 여전히 2년 임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독립적 지주 계열의 증권사들이 CEO의 장기 연임으로 회사의 발전성과 수익성에서 신뢰를 얻기 시작한게 계기가 됐다.

설문에 참여한 전·현직 CEO들은 자신을 믿고 기다려줄 지지자들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한 CEO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린 아이를 키울 때도 기다려 줬을 때 가장 좋은 교육이 되고, 과일 나무도 기다려야 열매가 맺힌다. 무엇보다, 정말 좋은 주식은 때를 기다렸을 때 그 가치를 수익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한다." 

증권업계 한 전문가는 "회사의 비전과 리더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이사진들과 주주들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CEO들 역시 자신이 전략적으로 추구하는 일을 이사회와 직원, 투자자, 고객에게 이해시키고 시간을 벌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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