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부터 일본거래소까지...금융투자업, 블록체인 바람(風) 탈래? 맞을래?
나스닥부터 일본거래소까지...금융투자업, 블록체인 바람(風) 탈래? 맞을래?
  • 어예진
  • 승인 2018.10.15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3년 美 시작 일본, 러시아, 영국 등 도입 추진...국내 '걸음마', 밥그릇 뺏길까 우려

[비즈트리뷴=어예진 기자] 1988년 PC통신의 효시인 천리안이 상용화됐다. 4년 후 하이텔이 생기고 나우누리, 유니텔 등 서비스 사업자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90년대 중반 이후엔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널리 상용화 되기 시작한다.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을 다운받는데 40분이 걸려도 우리는 환호했다. “세상에… 버튼 하나로 앉은자리에서 노래를 소유하게 되다니...”

 
오늘날 블록체인의 모습은 30년 전 PC통신이 세상에 알려질 때와 어찌 보면 비슷한 형국이다. 유사한 성장 경로를 따를지도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차세대 Killer(킬러)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블록체인이란 네트워크 참여자가 공동으로 거래정보를 검증하고 기록·보관함으로써, 공인된 제3자(중앙집중기관) 없이도 거래 기록의 무결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인프라 기술이다.
 
◆ 글로벌 시각은 ‘매우 긍정적’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거래 안정성과 투명성이다. 모든 거래가 중앙집중화에서 시장 참가자 간의 공동 소유 또는 분산화가 가능해진다. 중앙시스템의 보안 위험과 높은 관리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거래자와 중개자, 규제자와 같은 시장 참여 과정도 단순해질 수 있다. 거래 절차가 빨라지면 운영 비용 등 제 3자 기관에게 지불하는 불필요한 수수료도 절감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블록체인은 자산 관리나 증거금융자금(Margin Financing), 후선 업무 처리, 증권 대여(Securities Lending) 추적, 시스템 위험 모니터링에도 응용될 수 있다.

지난 6월 매킨지 보고서는 블록체인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금융서비스'의 핵심 기능은 금융 정보 자산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이는 블록체인의 핵심 영향과 매우 밀접하게 일치한다"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한 가지다. 공통의 표준과 규정, 법률과 같은 대외적인 문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이 새로운 기술은 정부와 감독당국 그리고 금융산업 자체가 극복해야 할 법적, 규제적 과제를 야기한다”면서 “블록체인의 구현은 확장성과 보안 표준을 유지해야 하는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 블록체인이 금융투자업계에 가져다 줄 잠재력은 엄청나다는 게 전반적인 견해다.
 
◆ 글로벌 주식 시장, 블록체인 도입 '활황'

해외에서는 이미 블록체인 기술을 그들의 거래시스템에 사용하기 시작했거나, 블록체인 도입을 연구하기 위한 기구를 설립했다.

나스닥은 블록체인 기술을 거래시스템에 적용시킨 '선구자'다. 지난 2013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증권거래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나스닥의 자체적인 장외 주식 거래 플랫폼 린크(Nasdaq’s own Linq Blockchain ledger platform)를 내놨다. 같은 해 12월에는 플랫폼을 통해 첫 클라이언트인 Chain.com(블록체인 스타트업)의 신주가 발행됐다. 현재는 블록체인 관련 지표와 블록체인 관련 기업의 잠재력 지수도 내놓고 있다.

예탁원 기능까지 통합된 호주 증권거래소 (ASX)는 2015년부터 청산 및 결제 시스템인 CHESS (Clearing House Electronic Subregister System)를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개발을 시작했다. 오는 2021년까지 완료해 증권 거래 전반에 걸쳐 일괄 도입할 예정이다.

일본거래소(JPX)도 IBM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장외 거래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금융회사와 예탁결제회사, IT회사와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증권 청산·결제, 증권 거래확인 업무 등의 프로젝트를 발굴 및 추진하고 있다.


모스크바거래소(MOEX)는 지난 2017년 블록체인을 이용한 주주 전자투표 파일럿 버전을 성공적으로 내놨다. 투표결과 위·변조를 방지하고 투표내역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착안해 낸 기술이다.

런던 거래소(LSEG)는 후선 업무 개선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키로 했으며, 증권 거래 청산·결제 및 주주투표 등을 위한 개념증명, 시범사업 등 추진 중이다.

칠레 산티아고 증권 거래소는 칠레 금융권 전반에 블록체인 기술을 최근에 적용시켰다. IBM과 산티아고 거래소가 구축한 이 솔루션은 각 거래의 오류, 사기 및 처리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거래 관리를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도록 설계됐다.
 
◆ 한국 금융투자업계 이제 '걸음마' 뗐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블록체인 도입은 해외 상황보다 1~2년 정도 느리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016년 9월 장외시장 스타트업 주식 거래시스템 KSM(KRS Start-up Market)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KSM을 통해 투자자가 스타트업이 발행한 비상장주식의 거래와 매매가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예탁결제원은 지난해 말 기술 도입을 위한 검증을 마치고 올해 중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전자투표 시법사업을 완료할 방침이다. 처리 성능과 속도 안정성 향상, 프라이버시 보장 등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2016년 국내 최초로 26개 금융투자회사와 5개 기술업체가 함께한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발족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 블록체인 기반의 공동인증 서비스 ‘Chain ID’를 출시했다. 한 번 인증하면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바로 금융거래가 가능해져, 인증기관을 여럿 둘 필요가 없어졌다. 인증서 갱신기간도 기존 1년에서 3년 이상으로 기능케 해 번거로움을 줄였다. 최근에는 ‘Chain ID’와 삼성패스(삼성 스마트폰 내 본인인증 기술)를 연계 운영해 금융거래 전자서명을 대체할 플랫폼을 구축을 중이다. 내년에는 장외 주식 시장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 금융투자업계 “밥그릇 뺏길라” … 대안 마련 ‘고심’

국내 자본시장에서의 블록체인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 한다.

거래의 보안성과 투명성은 보장되지만, 처리 속도나 용량, 거래 착오나 실수의 ‘취소·정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기술 표준화는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다.

증권업계에서는 활용보다는 피해 걱정이 더 크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개인거래소에서 P2P 형식의(개인과 개인 간) 주식 매매가 가능해질 경우 증권사 고유의 먹거리를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을 통한 인증 관련 부분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아 하나 둘 뛰어들고 있지만,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들이 자본 시장에 두루 상용화가 될 경우, 증권사의 서비스 독점화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은 풀어야할 과제로 따라올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업계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비에 나선 곳도 있다. 자신의 전문성과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로 시너지를 만들어 대안으로 삼자는 전략이다.
 
NH투자증권은 단독으로 싱가포르 블록체인 회사 쿼크체인 파운데이션과 협약을 맺고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안인성 NH투자증권 디지털본부장은 “보안성과 탈 중앙화 이슈가 되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고객에게 최적화된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