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김주하 농협은행장 퇴임사
[전문] 김주하 농협은행장 퇴임사
  • 승인 2015.12.29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즈트리뷴]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29일 퇴임했다. 

그는 이날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퇴임식에서 미국의 시인 마야 안젤루의 '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이리'을 인용하며 고별의 아쉬움을 대신했다.

이날 퇴임식은 올해말 퇴임하는 농협중앙회 상무 4명, 농협은행 부행장 6명과 합동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김주하 은행장의 퇴임사 전문이다. 

이제 저는 35년간 몸 담았던
농협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을 가슴에 안고,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먼저,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성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최원병 회장님과,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임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1981년 농협에 첫 발을 딛고
현재의 은행장 직까지 농협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모든 분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또한, 늘 곁에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농협 가족 여러분!
지난 35년을 돌아보니 꿈길을 걸어 온 기분입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나 기댈 곳 없던 제가 금융 업무에서만 35년 외길을 걸어와 은행장이란 막중한 소임까지 대과 없이 마쳤으니, '꿈길'이라는 표현 말고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참 복도 많고 운도 좋았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고도 가슴 아픈 추억 또한 적지 않습니다.

입사 2년 차인 '82년 농협 최초의 적자 결산, '94년에서 '96년 사이 회사채 지급보증과 미즈론의 대량부실을 경험하였습니다.
'98년 IMF 외환 위기로 임원진의 구속, 직원 강제 퇴직이라는 모진 풍파에 맞서
밤을 지새우며 울분의 탄원서를 썼던 기억도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2008년 리먼사태의 여파로업무 보고 시 사죄의 인사도 드렸습니다.
“LG카드 관련 특별이익을 조금 더 내실을 다지는데 썼더라면” 하는아쉬움도 남습니다.

당시의 부동산 PF·조선 RG·해운 등의 부실로
8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여진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협은행 2대 은행장에 취임하면서
'강하고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경영화두로  '중후표산'과 '개원절류'를 제시하고
여러분과 한 마음 한 뜻으로수익 중심의 경영에 몰입하였습니다.
저금리시대를 감안하여천수답경영에서 수리답경영으로 변화시켜
수익 다변화를 꾀했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더욱 집중하여대기업 비중은 줄이고
농식품기업 등 중소기업 비중을 확대하였습니다.

기업체 상시방문제도(C/L) 시행, 찾아가는 영업 등 건전성 관리와 마케팅 체계를 현장 중심으로 가다듬었습니다.

업계 최초의 복합점포 개설, 핀테크 오픈플랫폼 출시 등 금융변화에도 적극 대응하였습니다.

아울러, 대포통장 최저 수준 달성, 사회공헌 4년 연속 1위 등 '고객이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은행'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사무소장들에게 따뜻한 리더십을 주문하고.
현장 방문, 숨은 일꾼 시상 등 직장에서 따뜻한 기운이 돌도록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여신, 수신, 방카, 펀드, 신탁, 퇴직연금 등주요사업은 은행권 최상위 실적을 거양하였고자산의 질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시장은'농협은행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으로 화답하였고,
경쟁자들도 우리를 인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더욱 뭉치게 되었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열정이 만들어낸 가슴 뭉클한 성과들입니다.

농협 가족 여러분!
이제 7·8부 능선은 넘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향후 2~3년은 경영여건이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여전히 시장의 벽은 높고,
가야 할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시장 논리가 철저히 지배하는 금융 세계에서
다른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사업구조개편의 의미를 깊이 새겨더욱 시장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겠습니다.

3대 농협은행장으로 부임하실
이경섭 은행장은
농협에서 알아주는 기획통이자 전문성을 겸비하신 분입니다.제가 못다 이룬
'강하고 경쟁력있는 은행'의 꿈을
이경섭 은행장과 여러분이
반드시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농협 가족 여러분!
저는 이제 정든 농협을 떠나지만,
후배들을 위해 그동안 현장에서 누차 강조해왔던3氣 즉, '슬기, 열기, 온기'의 덕목을
다시 한 번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슬기'는 지혜로움을 뜻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입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균형감 있는 안목과 핵심을 파악할 줄 아는
지혜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혜롭게 일하며 나아갈 방향을 고민한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좋은 성과를 이룰 것입니다.

둘째, '열기'는 사명감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농협이라는 든든한 기반 위에서행복을 누려왔습니다.
선배들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농협을 더욱 발전시켜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에 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온기'는 소통의 리더십을 뜻합니다.
사무소의 실적은직원들 분위기만으로도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소통의 리더십은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자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원활한 소통을 한다면한 마음 한 뜻으로 공동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농협 가족 여러분!
저는 무엇이 되기 위해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일할 수 있는 기회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농협의 발전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농협을 사랑하는 것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제 삶이자 행복이었습니다.
떠난 후에도 농협의 발전을 염원할 것입니다.
좋은 일에는 박수치고 좋지 못한 일에는 바람막이가 되어후배들을 후원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혹여 재임 중에
저로 인해 섭섭한 점이 있었다면
업무상 불가피한 일이었거니 생각해주시고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저의 양복 깃에 꽂은
농협 뱃지는 떼지만, 제 가슴 속에 깊이 꽂힌 뱃지는 죽을 때까지 박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떠나 새로운 여정에 오르려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좋아하는 시 한 편과 함께
여러분을 떠나는 제 아쉬움을 대하고자 합니다.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더라
장미가 좋아서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서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더라
나!  시인이라면 그대에게 한 편의 시를 드리겠지만,
나!  목동이라면 그대에게 한 잔의 우유를 드리겠지만,
나!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이기에 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이리
(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이리 / 마야 안젤루 작(作), 그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오프라 윈프리 등과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이다.)

농협 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비즈트리뷴 권안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