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부르주아 가족과 사회가족
[엄길청 칼럼]부르주아 가족과 사회가족
  • 승인 2018.08.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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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하노버왕조의 마지막 왕이 된 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은 19세기 중후반의 그의 재임 중에 부모의 봉양이나 아동의 양육은 가족들의 보호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가족보호법을 제정하였다. 전통적인 왕가의 농노에서 벗어나 자영농업, 직인, 상인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영국왕실은 이제 가족은 가족구성원을 중심으로 스스로 가족을 돌보고 지키라는 법을 만든 것이다. 이후 현대사회로 오면서 자립적이며 독립적인 가족은 사회구성의 기본이자 국가성장의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유시민 사회에서 가족들을 보호하고 독립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성(castle)안에 살고 있는 자유시민들이 점점 무산계급(proletariat)에서 유산계급(bourgeois)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의 현대적 해석에서 가족이란 “부르주아 가족”이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왕정정치 상황에서 국가의 지원이나 도움이 아니라 가족들이 농업, 상업, 수공업, 서비스 등 개인경영을 통해 스스로 자산을 모아서 그 자산을 기반으로 가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된 것에서 독립적인 가족의 승계가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의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농촌에서 조차 부모의 작은 자산을 다시 나누어 자식들이 분가하여 독립적인 가구를 구성하던 사회였다. 보통 일반적인 가정은 논 2-3 마지기, 밭 200-300평 정도의 기초자산을 결혼하는 아들에게 떼어주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를 보고 있으면 다시 가족의 보호와 생업 승계문제가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의 범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노인들의 복지나 아동들의 양육에 대한 정책들이 이미 국가의 개입이 상당히 진행되었으며, 구직이나 창업의 문제도 국가의 지원이나 협력이 점점 가족의 일에 개입하고 있다. 

물론 부르주아 가족의 형편에 있는 가정에서는 여전히 부모의 보유자산을 기반으로 나누거나 지원을 받아 살아갈 수 있겠지만, 오늘날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근로자 가정의 자녀들은 이제 부모도 실업의 상태에서 자식도 역시 불안정한 고용으로 사회에 나오고 있어서 국가는 다시 이들 가족을 챙기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것이 인간 삶의 형식에 새로운 진전인지, 아니면 가족들의 생활자주력의 퇴행인지는 아직은 말하기 어렵다.

그러면서 다시 가족과 자산의 불가분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바탕으로 당시에 자본가들이나 권력자들에게 혹세무민 당하던 노동자들의 사회적 단결과 국가로부터의 보호를 주장한 공로가 있다. 그러한 시대는 다시 노동자와 농민이 주체가 된다는 공산주의의 시대를 열어 한 세기 동안 자유 시장경제주의와 대립하고 심지어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는 시대로 접어들기도 했다.
그 후 공산주의로는 서구 자유시장 경제사회와 경쟁하며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해결하기 어려워진 러시아와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시장경제의 채용과 사유재산의 도입을 통해 오늘의 상당한 개인 삶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나라는 다시 가족문제의 고유한 영역이던 일자리나 질병대책이나 노인문제 자녀보육 등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사회적 대책 수립에 관심들이 모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전반에 다시 사회가족(social family)의 필요성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의 욕구는 공유경제의 탄생이나 소셜 네트워크 등의 발전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 면의 다른 글로벌 상황을 보자면 영국 같은 나라는 그동안 공급하던 공공임대주택을 다시 입주자에게 사유주택으로 매각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전환요구가 더 강해져 사실상 공공임대주택 제도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는 그동안 사유주택 등이 많이 오른 것도 있고, 또 임대주택 거주자 중에서도 저축증가와 금리하락으로 주택매수보유능력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정부는 청년들의 생활환경을 보살피기 위해 백방으로 분주하다. 그 중에 주택에 관한 정책을 보면 임대주택 같은 사회주택의 공급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정책은 당장의 출산장려의 국가과제와도 일정하게 물려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하자면 그들도 후일 <부르주아 가족>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여력이 되는 가족들은 도시 안으로 그들의 가족을 불러들여 지금 서울 장안의 주택가격은 여타 다른 도시와 결이 다른 추이를 보이고 있다.

개인이 국가의 사회제도 변혁과 무관하게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가족구성원, 사유재산, 건강, 평화를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시작부터 자기 자산의 축적과 성장에 대한 준비나 훈련이 없이 청년들이 바로 임대주택의 이용자로 가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사회가족>화에 안주하면서 <부르주아 가족>으로의 진입기회가 근본적으로 배제되기 쉽다.

국가는 중단기적으로는 공공주택의 공급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사유재산 형성과 증대의 길을 동시에 열어주는 현명함이 필요해 보인다.  역사를 통해 보면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는 또 국가권력 엘리트들이 전횡을 하며 일명 <평등한 사회로의 독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린 지금 그 사회의 비참한 종말을 북한의 변화에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머지않아 논의하게 될 부동산 보유세를 도입하는 과정은 국민들이 일생을 통해 가족의 안위를 위한 사유재산의 건전한 육성에 대한 역사적이고 대중적인 가치를 저하시키는 방식이 아닌 사회적 공헌가치에 대한 자기헌신의 의미가 담기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엄길청,global analyst/global social-venture capita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