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 공준이 온다
[엄길청 칼럼] 공준이 온다
  • 승인 2018.08.1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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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 공준이란 학술용어가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기본원리와 똑 같을 수는 없지만 그에 준하는 의미를 가질 때 쓰는 단어가 공준(postulate)이고, 사회과학에서는 생각의 준거 틀을 말할 때 공준(frame of reference)이라고 한다.

이와 다른 말로 유사한 단어로는 수준(level)과 기준(standard)이 있다, 특히 수준, 공준, 기준의 단어가 민감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우리나라 경제현장이다.

수준이란 나의 존엄(dignity)을 기초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격이나 비용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효용이나 쓸모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을 지닌 럭셔리상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기준이란 단어는 한마디로 공공경제나 사회적 가치의 경제용어이다, 그래서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은 표준원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최저생계비나 최저임금이 다 그런 시대배경을 지닌다.

그러나 공준은 좀 까다롭다. 가격도 적당해야 하지만 역시 적당한 위신과 품격(prestige)을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수요가 잠재한 것으로 보자면 이만한 대상이 없다. 특히 중진국에 도달해서 선진국으로 가기 직전에 이런 시장들이 공급자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대개 위의 고급브랜드가 가격을 낮추어서 중상위 등급을 만들어 내려온다. 그런데 이 공준의식을 가진 소비자들이 아주 학습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자기 삶에서 자신의 위신을 지켜주는 아주 중요한 상품들이어서 의미부여도 높고 자부심도 강하다, 그러나 반대로 문제가 생기면 즉시 공분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요즘 BMW라는 독일자동차 브랜드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래서 국가가 나설 만큼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차는 원래 독일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 타는 소위 꽤 수준이 있는 명품브랜드(traditional luxury brand)이다. 그러나 급증하는 신흥국가의 신흥부유층들에게  많이 팔아보려고 적당한 가격으로 내려서 그만 공준시장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곳 소비자들은 애호가이자 저지자의 양면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까다로운 소비자(maven consumer)들이다. 특히 이 시장에서 품질(quality)에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들은 격분한다.

이런 시장을 준 명품(affordable luxury)시장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들인 돈에 비해 얻는 가치가 좋다는 의미이며, 요즘 유행하는 가성비 라는 말도 이런 함의가 담긴 말이다. 이미 패선이나 주얼리 등에서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한동안 자동차에서 많은 반향을 얻은 바 있다. 지금 한국의 BMW가 그동안 얻은 것 이상으로 그 시련의 시범케이스가 된 것이다.

참고하자면 중국에서 우리 물건이 잘 팔린다면 이는 대체로 그들 입장에서는 공준의 소비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수준 높은 고가의 고객은 아예 글로벌 명품을 쓰고, 일반적으로는 저가의 자국 제품을 쓰지만, 의식이 높은 준 명품 소비자들은 우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모레, 이랜드 등의 기업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다. 정말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한방에 훅 간다. 아마도 문화상품의 한류소비란 것도 이런 시장의 성격이 담겨 있어서 참 조심스럽다.

그런데 투자시장에도 이런 문제들은 존재한다. 바로 스튜워드십(stewardship) 문제이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수시로 많은 돈이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창업주가 그 돈을 다 조달하기란 어려워서 대개는 좀 커지면 증시에 상장을 하고 상장기업이 된다, 잘되면 참 좋다, 기업가치도 오르고 투자자도 행복해 한다, 그러나 기업이 문제가 생기고 실적이 어렵고 하면 여러 가지 형태의 경영 참여가 시작된다, 회계장부를  공개하야 하거나  주주총회를 열어주어야 하거나  경영진을 교체하기도 하고 매각도 한다.

기업을 공개하고 나서 유력한 투자자들이 사주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장기 보유하는 투자자들은 기업에도 힘이 되고 기업의 대외적인 명성도 올려준다,  그런 역할의 투자자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그런데 이제부터 이 국민연금이 스튜워드십을 발동한다는 것이다. 국내에만 250여개 회사가 5% 이상의 지분을 국민연금에게 주고 있어서 알만한 회사는 다 이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

대주주는 아니어도 이들은 공준을 가진 학습된 투자자들이다. 특히 공익에 저해하는 경영은 국가와 연대하여 경영에 간여할 것이다. 응당히 잘 대비해야 하지만 유사시에 위기관리 역량도 키워야 한다. 대주주의 입장에서 그런 일을 대비하는 전문가들이 바로 family steward들이다.

주택이나 자동차, 항공, 호텔, 보석, 백화점, 골프장, 의약, 학교, 외식 등은 개인이 가장 돈을 많이 들이는 의미 있는 의식소비이자 한편으로는 일종의 삶의 투자이다, 그래서 이런 부문에서 공준의 소비자나 투자자가 많다는 사실을 꼭 유념할 일이다.
 
[엄길청, global analyst/global social impact capita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