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노트-이제 다시 경제④] 정권 따라 손바닥 뒤집는 정책에 '한숨'
[재계노트-이제 다시 경제④] 정권 따라 손바닥 뒤집는 정책에 '한숨'
  • 전지현
  • 승인 2018.05.2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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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낭비'. '규제의 족쇄'. 최근 재계 곳곳에서 이런 목소리는 자주 들려온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재벌개혁, 이에 따른 반기업 정서의 확산, 정권 따라 손바닥 뒤집는 정책까지. 경영의 불확실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적폐청산에는 공감하나, 연착륙은 중요하다. 정치적 잣대로 기업과 시장을 바라봐서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될 리 만무하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을 놓고 볼때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경영·경제학자의 지적은 차고 넘친다. 기업의 경영시계가 멈춘 후에, 기업이 보따리를 싼 후에 후회하면 늦는다.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 이제 다시 경제를 생각해야 할 때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기업들은 정권교체기마다 일단 숨을 죽인다. 정치적 결정에 따라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따라 손바닥 뒤집는 정책에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기업들의 '한숨'이 높아지고 있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은 교체된 정권에 따른 이중잣대 논란으로 새삼 부각되고 있다.

 
금감원은 특별감리를 진행하면서 문제가 새롭게 드러난 것이란 주장을 펼치지만, 180도 입장을 바꿀 정도로 명쾌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부 언론과 업계는 정권에 맞춰 입장을 바꿨다는 데 시선을 모으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는 지난 1일 금감원이 이 회사에 대해 회계처리 위반으로 잠정 결론 내리면서 시작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할 때 '회계기준'을 위반했는지 '고의성' 여부가 이번 분식회계 논란의 핵심으로 꼽힌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기준 변경에 따라 설립 4년차에 돌입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가치를 '장부가액'이 아닌 '공정시장가액'을 적용해 5조원으로 평가한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3년여가 지난 현재 이러한 삼성바이오에피스 가치 평가를 원래 장부가액인 3000억원으로 돌려놔야한다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금감원이 지난해 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관련 전문가 회의를 소집해 '문제없다'고 밝혔던 사실이 주목받으며 새국면을 맞게 됐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이 같은 회계 결정이 회사 자체 판단이 아닌 국내 대형 '3대 회계법인'으로부터 합격 판정을 받았던 것을 밝히면서 금감원의 앞선 결정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년 4개월만에 결정을 번복하는 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한 청원자는 "이미 정상적인 회계처리임을 발표한 사안을 지금에 와서 뒤집는 금융기관의 처리방에 이중적잣대는 금융기관으로 신뢰성이 없고 선물거래시장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데서 더 큰 문제"라며 "금융기관이 정치권 영향과 입맛에 따라 말빠구는 형태는 잘못된 처리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정권 교체에 따른 오락가락 잣대가 국내기업 전방위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친화 정책이 강조되면서 사업 분할 및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를 바꾸거나 배당 확대로 내몰렸다.
 
CJ는 지난해 말, CJ제일제당 100% 자회사인 영우냉동식품이 KX홀딩스를 인수해 KX홀딩스가 보유한 CJ대한통운 지분을 CJ제일제당으로 일원화하고, C제일제당 자회사인 대한통운이 CJ의 자회사 CJ건설을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롯데는 지난해 투명경영,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순환출자 고리를 기존 50개에서 13개로 대폭 정리하는 한편, 배당성향을 두배 이상 늘렸다. 롯데쇼핑은 배당 성향을 지난해보다 두배 확대한 주당 5200원으로 정했고, 롯데칠성은 배당금을 세배 이상 늘린 주당 3만3000원으로 책정했다.
 
정권교체 리스크는 이중잣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롯데쇼핑은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군산에 문을 연 롯데몰을 오픈 나흘만에 '영업 일시 중단'이란 압박을 받아야 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상생합의를 거쳤지만, 지난달 30일 공표된 '대·중소기업상생협력 촉진에 관란 법률(상생법)'에 의해 또 한번 규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환경이 대기업과 소상공인, 대기업과 재래시장 등 프레임으로 짜여지면서 정권이 교체될때마다 규제가 계속 강화되는 모습"이라며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하며 변화되는 소비트렌드에 빠르게 맞춰 가기에도 벅찬데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고용 및 투자 불안만 커지고 있다"며 자조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소기업까지 범위를 넓히면 프랜차이즈업계는 원가·원료·영업비밀 공개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권교체에 따라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북한에 투자했던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거나 경영에 애로를 겪는 중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하는데 정권에 따라 실익 여부를 떠나 '찍혀서는 안 된다'는 눈치가 작용하고 있다"며 "기업입장에서는 경영 불확실성을 높일 수 밖에 없는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