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회장 타계] 23년 '끈기와 결단' 리더십…글로벌 기업으로 도약
[구본무회장 타계] 23년 '끈기와 결단' 리더십…글로벌 기업으로 도약
  • 이연춘
  • 승인 2018.05.2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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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이차전지·통신사업 선도사업으로 육성
-과감한 결단·집념…디스플레이사업 세계1위로 키워
-3년 걸릴 LTE 투자 9개월만에 LTE 통신시장 판 바꿔

[비즈트리뷴=이연춘 기자] LG그룹 3세 구본무 회장이 20일 오전 타계했다. 향년 73세다.
 
구 회장은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하는 한편, 자동차부품,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성장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LG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미래를 위한 사업과 경영활동에 있어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며 용기 있고 과감하게 추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해 결실을 맺는 구 회장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은 취임 후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경영진들에게 각 사업에서 일단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그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지 않고 부단히 도전해 결국에는 목표를 달성할 것을 강조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 통신사업 등으로, 이는 구 회장이 미래 준비를 위해 과감한 끈기와 결단으로 성과를 낸 사업들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정부가 주도한 빅딜 논의로 반도체사업의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영위하고 있었던 LCD사업을 따로 분리하여 별도의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하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그룹의 운명과 장래를 생각해 수없이 많은 고뇌 끝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 육성이라는 신속하고 단호한 결단으로 LG의 미래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던 것이다.

반도체 빅딜 직후 LG는 14개월 동안 지속됐던 외자유치 협상에 속도를 올리며 전력투구해 1999년 5월 네덜란드 필립스社로부터 당시 국내 민간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달러의 자본유치에 성공하고 3개월 후 합작법인 LG필립스LCD를 출범시켰다

디스플레이 분야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LCD분야의 기초 기술력을 보유한 필립스와 응용기술이 강한 LG의 공동 합작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 합작으로 LG는 대규모 신규투자에 따른 자금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전세계 LCD시장의 급격한 수요 증가를 적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공급능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LG는 필립스와 결별, 2008년 단독법인인 LG디스플레이를 출범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으로 거듭났다.

구 회장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향한 집념을 바탕으로 LG가 디스플레이 사업에 처음 진출한 1995년 이래 지난 20년간 40조원 이상을 투자하며 1995년 경북 구미에서 첫 번째 공장을 가동할 당시 임직원 수 1100명, 매출액 15억원 규모의 기업을 임직원 3만여 명에 2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1위 기업으로 육성한 것이다.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은 구 회장이(당시 부회장) 연구개발을 제안한 92년 이후 20년이 넘는 연구개발 끝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치며 현재는 LG의 핵심 성장사업으로 키워냈다.

1992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그는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영국 출장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을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이 가능한 이차전지를 처음 접하고, 이차전지가 미래의 새로운 성장사업이 될 가능성을 보았다.

이에 구 회장은 당시 계열사였던 럭키금속에 이차전지를 연구하도록 했고, 1996년 럭키금속의 전지 연구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하여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수년간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러나 구 회장은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하라.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고 독려했다.

2005년에는 이차전지 사업이 2천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구 회장은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라고 다시 한번 임직원들을 다독였다.

그 결과 LG화학은 중대형 이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평가 받고 있으며, 특히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현재 현대기아차, GM, 포드, 르노, 중국 상하이자동차, 코로스, 폴크스바겐그룹의 자회사 아우디에 등 30여개 이상 완성차 업체를 배터리 공급처로 확보하며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구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1996년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뒤 2000년 유선사업을 인수하며 통신사업을 강화했으며, 2010년에는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통신 3개사의 합병을 통해 LG유플러스를 출범하며 통신사업을 LG의 주력사업 기반에 올려놓았다.

특히 구 회장은 LG유플러스 출범 이래 과감한 투자 결정을 통해 통신 업계의 약자였던 LG유플러스를 시장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탈바꿈시켰다.

LG유플러스가 네트워크에서도 경쟁사에게 밀리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주파수를 사용해 고객의 선호도에서 어려움을 겪어 오던 중, 기존 3G보다 5배 빠른 4G LTE 시대가 도래해 오자 구 회장은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히 투자할 것”을 독려했던 것이다.

이에 LG유플러스는 당초 계획보다 더 높은 1조 7000억원을 투자, 3년 계획이었던 LTE 전국망 구축을 단 9개월 만에 끝내고 LTE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LG유플러스는 3밴드 LTE-A를 제공하고, 기존 LTE보다 4배 빠른 업로드 속도를 제공하는 ‘업링크 CA(UpLink Carrier Aggregation)’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앞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비디오 LTE 핵심 서비스를 대거 선보였다.

2011년까지 17%대를 맴돌았던 점유율을 20%대까지 끌어 올리며 10년째 통신 시장에서 요지부동이던 '강-중-약' 체제를 '1강-2중' 체제로 재편하며 LTE 통신시장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