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희 칼럼] 반(反)기업 정서가 아니라 반(反)오너 정서
[반병희 칼럼] 반(反)기업 정서가 아니라 반(反)오너 정서
  • 반병희
  • 승인 2018.05.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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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오너 집안의 ‘갑질’ 제보가 잇따르고, 이에 경찰, 공정위, 관세청, 국토부 등 거의 모든 사정기관이 총동원돼 한진그룹 계열사를 조사하고 있다. 1일에는 이번 사태의 장본인 조양호 회장의 딸 조현민씨가 경찰조사를 받았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언뜻 볼 때는 한진그룹에 엄청난 비리가 터진 것으로 생각할 만하다.

단순 '물컵 투척사건'(정확하게는 '매실음료 투척')이 이렇게 범국민적 분노를 가져온 것은 그 동안 ’수퍼 울트라 하이퍼’ 갑으로서의 감춰진 행태가, 처벌받지 않은 위법행위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 자본주의 잣대에 비춰보면 한진오너 일가의 행태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 저개발 국가에서나 일어날만한 일이 세계 경제규모 13위 국가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럽기까지 하다.

 

 

한진 오너 일가의 비뚤어진 행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한진그룹은 고도압축성장기 시절 서구식 자본주의를 왜곡, 활용하며 성장한 전형적인 사례다. 과거 국가주도 경제성장개발기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물류 기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한 것이 한진그룹이다. 덕분에 막대한 국민 세금과 정부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노동착취와 오너일가의 전횡도 적당히 눈감아줬다.

그렇다면 한진은 원론상 어디로 보나 '국민의 기업'이고,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상법상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주주가 100% 주인이라는 생각은 엄격히 따져 맞지 않는 얘기이자 천박하기 그지 없는 논리이다. 주주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그 동안 받아온 정부의 유·무형 지원을 모두 갚아야 한다. 특히 정부 규제를 통해 경쟁사의 진입을 막아왔고, 알짜배기 노선을 독점하고, 외국 항공사의 취항을 지연시켰던 무형의 혜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혜택이다.

이런 기업의 자손들이 “한진은 내거야”라고 주장하며, 임직원을 조선시대 노예처럼 취급하며 안하무인 격으로 대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의 가족 기업 가운데, 단지 집안 자손이라는 이유로 젊은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하고 대표이사를 맡는 경우는 없다. 신입사원으로 똑같이 출발해 철저하게 경영능력을 검증 받고, 임직원과 외부 이해관계자의 인정을 받아야만 대표를 맡을 수 있다. 이는 상장이냐, 비상장 기업이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재계 인사들은 한진 사태를 계기로 반(反)기업 정서가 고조될까봐 걱정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해야 한다. 한국에는 반(反)기업 정서가 아니라 반(反)오너 정서가 존재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대기업 오너들의 잘못된 행태를 너무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한진과 같은 성장과정을 밟은 재벌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질타를 새삼스러워하면 안된다. 정권의 지원아래 알짜배기 기업을 손쉽게 인수하거나, 중소기업들에 돌아갈 수출장려금 등 정책자금을 가로채기 일쑤였다. 여기서 자유로운 재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정반대 사례도 있다.

재벌 3세경영인 SK 최태원 회장의 차녀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처녀가 해군장교(OCS)로 자원 입대해 남자도 힘들다는 함정근무를 만3년이나 한 것은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쥬라 할 만하다.차녀가 보여준 도전정신과 공공이익에의 기여는 ‘한번쯤 눈여겨 보라’고 권유한다.
 
국민들은 대한항공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으며 성장하고 한국을 빛내주기를 바란다. 다만, 그러한 국민적 열망을 왜곡해서 대기업의 황제적 권력과 혜택만을 누리며,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몰지각한 오너 일가는 반드시 망해야 한다. 부모 잘 만난 덕에 오만과 독선, 인격적 결함을 갖고 있는 재벌 3, 4세의 비윤리적 행태가 앞으로 속속 터질 것이다. 부자가 3대를 넘기지 못한다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다.

 

한국 기업이 다시 한번 도약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미달의 오너를 대기업에서 솎아내야 한다. 재벌이 성장과정에서 국민과 국가에 진 부채를 고려할 때 국민들의 이런 요구는 정당하다. 재벌가의 체질과 문화를 바꾸는 정도로는 안된다.

 

[반병희 비즈트리뷴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