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증권 사태, '해이·부실·안일'이 빚은 비극
[기자수첩] 삼성증권 사태, '해이·부실·안일'이 빚은 비극
  • 김현경
  • 승인 2018.04.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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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이 아닐까 싶다. 금융당국의 연이은 소환은 물론 피해 투자자들에 대한 사과방문까지, 배당사고가 발생한 6일 이후 쉴 틈 없이 사고 수습에 나서고 있는 구 사장은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6일 삼성증권에서는 사상 초유의 배당사고가 발생했다. 담당직원의 전산입력 실수로 우리사주에 대해 배당금 1000원이 아닌 주식 1000주가 입고되는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우리사주 주식 물량 283만1620주에 대해 28억3160만원이 아닌 28억3160만주가 잘못 입고됐다.
 
이번 사고는 왜 일어났을까.  이익에 눈이 멀어 주식을 매도한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사고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내부 통제 시스템의 미비, 사고 발생 후 회사가 보여준 안일한 대응 방식,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발생한 '금융 참극'이다.
 
잘못인줄 알면서도 한몫 챙기는데 급급했던 일부 직원들은 모럴해저드의 극치를 드러냈다. 특히 주식을 매도한 직원에는 팀장급 간부와 애널리스트도 포함돼 충격을 더했다.
 
물론 삼성증권은 시장에서 거래된 유령주식 501만주를 다시 사들이거나 대차하는 방식으로 전부 회수했다. 또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주식을 매도한 직원들에게 배상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백억원대 자산가를 꿈꿨던 직원들은 이제 100억원 규모의 매매차손을 떠안게 됐다.
 
담당직원의 입력 실수였다는 삼성증권의 해명도 의아함을 자아낸다.
 
실수든 고의든 '원'이 아닌 '주'가 입력되는 동안 시스템에서 오류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내부 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비슷한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증권업계에서도 시스템 부실을 이유로 일어난 사고라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대형증권사인 삼성증권에서 사소한 실수를 막아낼 수 있는 '블록킹 시스템'도 없고 현금과 주식 입력 시스템도 구분되어 있지 않은, 부실한 시스템을 사용했다는 점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정말 '들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사고 발생 후 삼성증권이 보여준 안일한 대응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실제 삼성증권에서는 배당 입력 오류를 인지하고 잘못된 주문을 차단하기까지 37분이나 소요됐고, 그 사이 직원 16명은 잘못 입고된 주식 501만주를 매도했다. 
 
삼성증권 배당사고에 대한 여론의 분노는 공매도 폐지론으로 옮겨 붙고 있다.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501만주에 대해 매도 주문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를 무차입 공매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은 공매도 폐지를 통해 유령주식이 시장에 풀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결방안은 문제가 시작된 곳에서 모색해야 한다.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한 개인의 실수에 회사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었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또 사고 발생 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끔 대응 매뉴얼도 마련해야 한다. 삼성증권은 사고 인지 후 초기 대응까지 37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던 만큼 위기대응 매뉴얼이 없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류를 사전에 발견하지도, 중간에서 걸러내지도, 대응하지도 못했던 시스템 속에서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와 더불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실제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만큼 삼성증권은 주식을 매도한 직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잃어버린 증권업계의 신뢰 회복을 위해, 모럴해저드의 결말이 '자기반성' 정도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어선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