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삼성 반도체 30년 노하우를 누구나 본다고?…기술유출 책임은 누구에게
[기자들의 팩자타] 삼성 반도체 30년 노하우를 누구나 본다고?…기술유출 책임은 누구에게
  • 이연춘
  • 승인 2018.04.09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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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히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이연춘 기자]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는 안됩니다. 보고서엔 우리의 20년, 30년 노하우가 들어있습니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의 말입니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국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에 대한 우려를 직접 나서서 말한 것입니다.
 
김 사장의 발언은 지난주 삼성전자 '상생협력데이'에서 작심발언으로 나왔습니다. 정부가 산업재해 피해 입증을 이유로 삼성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생산 기술 노하우가 담긴 자료를 공개하기로해서 논란이 뜨겁습니다. 현재 가동 중인 삼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 전체가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에서도 걱정스럽다고 합니다.
 
관련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고용부는 최근 충남 아산 탕정 삼성디스플레이공장에 이어 경기 화성, 기흥,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 측정보고서도 공개하기로 했죠.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측정 결과보고서 공개는 왜 시작됐을까요. 논란은 산업재해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시민단체와 산재 피해자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산재 피해 입증을 이유로 관련 보고서 공개를 요구해왔습니다. 그동안 고용부는 "기업의 영업기밀을 공개할 수 없다"고 거부해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이 백혈병 사망사고가 난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대한 정보 공개를 결정한 이후 관련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결정은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려는 의도입니다. 필요한 부분이고 이해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본연의 의도를 넘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라고 신중하게 접근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쪽을 아픔을 치유하려다 다른 한쪽마저 크게 다칠 수 있는 결정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보고서 공개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기술은 중국 등 경쟁국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시간 문제라고 걱정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국격에도 큰 타격이 예상되는 기술유출의 책임은 누구에 있는 걸까요.  

 

업계에서는 측정보고서에 생산시설의 구조와 공정순서, 개별장비의 위치가 들어 있고, 각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제품 모델명도 담겨 있어 후발주자인 중국 업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지적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선 산업 재해를 둘러싼 합당한 수준을 정보 공개 범위를 넘어선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업계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정부가 기업의 정보를 공개할 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이번 보고서 공개 논란은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처음으로 점유율 20%를 돌파하며 저력을 과시하며 '반도체 코리아'를 외치는 상황에 찬 물을 끼언지는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반도체 코리아'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잠재적 경쟁자 중국의 성장세가 위협적인데 경계를 늦춰도 모자랄 판에 고스란히 핵심 노하우를 공개한다니 걱정이 단순한 기우만은 아닙니다.

 

한순간에 수십년깐 쌓아온 노하우를 공개하라는 결정에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삼성전자는 보고서 공개를 막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 청구에 수원지방법원에도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보고서 공개 결정에 대해 삼성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단연 기술 유출입니다.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각 업체들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들이 추가적으로 공개된다면 기업들의 핵심 기술 정보들이 무방비로 유출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죠.   


일각에선 산업재해 피해를 막겠다는 이유로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핵심 성장축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외부 공개를 허용하게 되면 한국의 핵심 기술 유출될 뿐 아니라 앞으로 핵심 성장동력 하나를 없애버리는 무책임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A사 관계자는 "동종 업계로서 상황을 상당히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며 "보고서가 제3자에게까지 공개되면 중국의 경쟁 업체가 볼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B사 관계자도 "업체가 수년간 시행착오 끝에 축적한 노하우를 단시간에 빼앗길 상황에 놓인 상황"이라며 "정부가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중국 등 경쟁 업계에 정보를 떠먹여주는 격"이라고 정부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공정성 논란도 있습니다.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피해자 측을 변론한 변호사가 고용노동부에서 기업 정보 공개 여부를 다루는 실무 책임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정보 공개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정부가 공정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반도체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작업환경 측정결과보고서 논란을 보면서 분명한 생각은 듭니다. 정부가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겁니다.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고용부의 결정을 철회하라는 글들이 연일 올라오고 있습니다. 게시판 내용에는 이런 글들이 많습니다. 
 
"고용부는 국익을 외면한 무리수를 두느냐", "누구를 위한 보고서 공개 결정이냐".
 
많은 이들이 되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