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현대차, 왜 지주회사를 택하지 않았나
[기자들의 팩자타] 현대차, 왜 지주회사를 택하지 않았나
  • 강필성
  • 승인 2018.03.29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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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히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을 택했습니다.”

 

한 애널리스트가 28일 발표된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계획을 두고 한 말입니다. 실제 그동안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식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의 투자·핵심부품 부문을 분리해 최상단 지배회사로 두는 방식에 대한 예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이 방식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얻는 실익이 거의 없습니다.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를 위해 4조6000억원이 넘는 자본을 지출해야 하는데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1조원으로 추정되는 양도소득세도 내야하기 때문이죠. 실익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막대한 자금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현대차 오너일가가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기로 했다면 적어도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이연시킬 수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으로 공고한 지배권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계의 다른 주요 그룹들이 지주회사 체제를 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 왜 현대차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를 택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정부에 의해 등이 떠밀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취임 직후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을 강조해왔기 때문이죠.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11월 두차례 열린 간담회에서 이달까지 자발적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으라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발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적·재정적 수단을 통해 강제하겠다는 엄포도 곁들어졌죠. 

왼쪽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ㅣ사진=현대차그룹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는 십수년간 이어져 온 공고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해소하기에는 필요한 자금이 천문학적이었던 것이죠. 때문에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 속에서도 ‘단기간 내 추진이 힘들 것’이라는 우려는 늘 상존했습니다. 

 

이 상황에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보다 많은 비용이 드는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한 겁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오너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룹사의 미래 경쟁력 강화와 대주주의 사회적 책임을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주주의 동의가 없으면 이뤄지기 쉽지 않습니다.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에 대한 주주의 찬성여부는 물론 공고한 주가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오너일가의 지분 매입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명분과 주주, 기업가치를 살리는 정공법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를 택하지 않음으로서 미래사업을 보다 자유롭게 추진될 수 있다는 점도 시장의 기대를 모읍니다.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를 택했다면 지주회사법에 따라 금융사인 HMC투자증권과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등 금융 계열사를 매각해야 했습니다. 

 

또 손자회사 이상을 하부 계열사로 둘 수 없는 규정 탓에 증손자 회사로 편입되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제철에 대한 대규모 지분 조정이 불가피했죠.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를 택하지 않음으로서 얻은 것은 바로 지배회사인 현대모비스의 사업 확장 가능성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투자회사 역할만 해야 하는 지주회사와 달리 현대모비스는 앞으로 다양한 흡수합병, 증손자회사 편입 등 다양한 방식의 M&A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강점”이라며 “현대차 오너일가가 지배구조 개편 이후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시장의 평가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다음달부터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에 대한 반대의견 및 주식매수청구권을 접수 받습니다. 과연 현대차그룹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주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