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당국, 지나친 신중함에 '한국판 골드만삭스' 꿈도 못꾼다
[기자수첩] 금융당국, 지나친 신중함에 '한국판 골드만삭스' 꿈도 못꾼다
  • 김현경
  • 승인 2018.03.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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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 지난해 7월 초대형 IB(투자은행) 지정을 신청한 5개 증권사에 대한 지정안이 모두 통과됐지만, 업계에선 초대형 IB의 핵심사업으로 꼽히는 단기금융업무(발행어음 허용) 인가는 한국투자증권에만 허용돼 초대형 IB가 불완전한 출발을 하게 됐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일반 투자자에게 발행하는 만기 1년 이하의 단기금융 상품인데, 자기자본이 4조원을 넘은 IB가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발행어음을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발행할 수 있고 이렇게 모은 자금을 기업대출 등에 쓸 수 있다.

은행과 달리 증권사는 고객 예탁금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어 환매조건부채권(RP), 주가연계증권(ELS)ㆍ파생결합증권(DLS) 등의 상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발행어음은 적은 조달비용과 함께 만기 등의 면에서도 제약이 적어 매력적인 사업으로 꼽혀 오매불망 금융당국의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인가가 보류되면서 결국 자기자본 8조원으로 '한국판 골드만삭스'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미래에셋대우는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늘리는 '자체도생'의 길을 택했다.
 
특히, 최근 규제 강화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금융당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판 골드만삭스 탄생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금융위원회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범위 확대 및 심사 요건 강화를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심사 강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발행어음 인가가 무기한 보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동안 야심차게 준비해왔던 IB 관련 사업들도 추진동력을 얻기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제2호' 발행어음 사업 인가 증권사로 유력하게 꼽히던 NH투자증권은 최대주주인 NH농협금융지주에 대한 지배구조 및 대주주 적격성 검사로 인해 승인이 지연된 바 있다. 삼성증권도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지분 0.06%를 보유한 특수관계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인가가 보류됐다.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확충에 성공한 미래에셋대우는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이 가능한 8조원 규모의 증권사로 올라섰다. 국내 증권사 중 최대 규모지만 세계적 흐름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고는 하지만 자기자본 100조원이 넘는 골드만삭스와 국내 증권사들 규모는 솔직히 비교하기 조차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지원을 해줘도 모자를 판에 규제만 하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금융시장 환경은 해외투자 비중 확대, 디지털화, 전통적 수익원 축소 등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기존 사업모델을 넘어 미래먹거리를 개발하고,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상대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세계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 있으면 결말은 '우물 안 개구리'뿐이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할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규제에 국내 경쟁은 시작도 못해본 만큼 한 발 늦은감이 있다. 금융당국이 조속히 발행어음 인가를 마무리해야 할 이유다.
 
자본 규모가 커지는 만큼 리스크 부담을 안게 된 금융당국의 신중한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돌다리만 두드리다 성장의 기회를 놓칠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