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아카시 모토지로의 제정 러시아 파괴 공작서 입수
연세대, 아카시 모토지로의 제정 러시아 파괴 공작서 입수
  • 김상진
  • 승인 2018.02.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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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모토지로는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유럽에서 러시아 배후를 교란할 목적으로 제정 러시아 반정부 세력을 규합, 러시아 정부를 공격하는 공작을 전개해 일본을 도운 인물이다.


러시아 파괴공작서는 이 시기의 공작활동을 기록한 보고서로 러일전쟁이 끝난 후 일본군 육군 참모차장에게 보고한 공작결과 복명 보고서다. 보고서의 표지에는 「낙화유수(洛花流水)」라고 기록해 표지만 보고서는 공작서라는 것을 알수 없다.


이 보고서는 중일전쟁(1937년) 직후 세워진 일본 육군 나카노 학교의 교재로 사용됐다. 나카노 정보학교 제1기생 교육을 담당했던 아키쿠사 슌(秋草俊) 대령이 나카노 학교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교재를 찾다가 일본 육군참모본부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낙화유수」를 발견, 나카노 학교의 기본교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아카시 모토지로는 나카노 학생들의 롤 모델이 됐다.


9개장으로 구성된 A4 용지 80장 분량의 보고서는 공작목표인 제정 러시아의 역사, 공작대상인 반정부 단체 및 인물들의 성향과 취약점을 분석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러일전쟁이 끝나자 일본으로 돌아온 아카시 모토지로는 곧 초대 한국주차 헌병대장으로 부임했다. 러일전쟁의 승리에 고취된 일본이 대한제국 파괴를 본격화하는 시점이었다. 아카시는 제정 러시아 파괴공작에 쓴 공작수법을 한국침략에 원용했다.


공작서는 일제강점기 각 지방의 헌병대와 경찰관서에서 식민통치에 필요한 비밀정보를 수집해 중앙본부에 보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때 구축된 경찰정보체계는 그 후 일제 패망 때까지 30여년간 식민통치에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