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유통 무슨일이①] 기흥혼수센터 상인들 법원 간 까닭
[농협 유통 무슨일이①] 기흥혼수센터 상인들 법원 간 까닭
  • 승인 2018.01.1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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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측 "법적 문제 없다" vs 상인들 "일방적인 계약 해지"
[비즈트리뷴] "농협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내세우고 있는데 우리(상인들) 입장에선 오랫동안 닦아온 터전을 하루 아침에 잃게된 겁니다.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이곳을 일구고 유지해왔는데… 본사(농협)에서 내려온 직원들의 온갖 갑질에도 참고 견디며 유지해온 우리의 삶의 터전입니다. 참담하죠." (기흥혼수센터 비상대책위 관계자)

"기업의 일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나 고의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으며,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 (농협 관계자)

농협중앙회에서 분사된 농협하나로유통(이하 농협 유통)이 40여년을 이어온 기흥혼수센터 상인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상인들 주장으로는 농협 유통에서 계약을 일괄적으로 해지하면서 상인들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거리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협 유통 측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입장차를 보이며 갈등을 빚게 됐을까. 

▲ 지난해 9월 기흥혼수센터의 리뉴얼과 퇴거 통보가 이뤄진 뒤 상인들이 정문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 l 기흥하나로혼수센터 비대위
 
▲ 기흥혼수센터 어떤 곳…갈등의 시작과 경과

기흥혼수센터와 상인들의 인연은 1974년 서울 중구의 현 남대문경찰서 자리에 농협하나로유통이 혼수제품을 집적 판매하는 시설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양측은 여러 차례 센터의 위치를 옮겨갔는데, 을지로6가 서울음대 자리(1980년경), 현 헌법재판소 자리(1987년), 성남시 상대원동 구상일가구창고(1988년), 양재동 양재하나로클럽 등이다.

이렇게 센터의 위치가 변동됨에 따라 상인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농협의 결정을 따라 움직여야만 했다. 농협 유통은 그사이 수백억 원의 토지시세차익 등을 별도로 챙겨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농협 유통은 지금의 기흥혼수센터를 종합 유통센터로 탈바꿈한다는 명목하에 상인들에게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퇴거를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입점 업체 중 본사직영점의 경우 큰 문제 없이 리뉴얼 이후에도 입점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예정이지만, 위탁사업자는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됐다. 새롭게 지어지는 유통센터가 기존에 판매대금의 2.3%~10% 수준으로 부과됐던 수수료에서 급격하게 오른 최대 25%의 '백화점식' 방식을 채택한다는 얘기가 떠돌면서 위탁 상인들의 입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희숙 기흥혼수센터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40여년동안 농협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일방적으로 내쫓았다"며 "농협에서 겨우 제안한 것은 본사와 MOU를 맺는다고 것 뿐이었고, 본사와 20%대의 수수료가 오고가면 가운데서 판매해오던 상인들은 곧 나가라는 말"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농협 유통 관계자는 "사업성 때문에 리뉴얼을 결정했고, 향후 동탄유통센터가 개발되면 희망하시는 분들에 대해 일괄적으로 재계약 해준다고 했다"며 "본사직영점과 위탁사업자가 있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계약 상대자인 본사와 계약을 맺는게 법적으로 맞고, 본사와 위탁사업자 간의 문제에 개입하는 건 오히려 월권이라고 생각한다"며 상인들에게 어떤 보상도 해줄 의무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상인들은 농협 유통 측에 본사와의 MOU가 아닌 상인들의 입점을 보장해주는 확인계약서 작성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대문 일각에 나가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상인들은 입점이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면 농협 유통이 LH에 제공한 존치부담금 약 9억원 중 'LH 측에서 수용시 상인들에게 지급할 보상금으로 책정했던 30억원에 대한 공제금'으로 책정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 씨는 "농협은 10년동안 기대감을 가지고 묵묵히 버텨온 우리를 배제시키고 단순히 임대차 계약이 끝났으니 보증금을 받고 나가라고 하고 있다"며 '"농협와 우리가 맺었던 계약관계는 일반적인 임대차 계약과는 다른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혼수센터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은 없었지만 혼수센터의 유지를 위해 소유자인 농협 유통에 상응하거나 그보다 더한 대가를 지불해가며 40여 년간 희노애락을 함께해 왔다. 그런데 법 앞에 무지했고 농협 유통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있었기에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놓지 않았던 결과,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호소했다. 

▲ 기흥혼수센터 부지의 존치 결정 당시 농협 측의 설명서 l 기흥하나로혼수센터 비대위

▲수용 과정에서 문제점은 뭐?…도덕적으로 문제는 없었나

상인들이 언급하고 있는 보상금 문제는 지난 2007년경 화성시 영천동 603-1번지 소재의 현 기흥혼수센터 자리에서 LH(당시 한국토지공사)가 동탄신도시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이 토지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힌데서 비롯된다.

LH는 수용의 조건으로 상인들의 영업권 손실에 대한 보상을 위해 근로자와 지장물, 시설물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나 수용을 원하지 않았던 농협 유통 측은 동탄신도시 개발 후 있을 이득을 근거로 상인들을 꼬득여 존치를 성공시켰다.

결론적으로 농협 유통이 상인들에게 심어준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동탄신도시 개발이 완성될 것이고, 매출 증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상인들은 30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존치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존치 결정이 나기까지, 직전 센터의 위치였던 양재하나로클럽 자리에서 화성의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매출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여서 존치파와 반대(손실보상)파가 나눠지기도 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특히 보상쪽으로 기울었던 농협 유통의 퇴직자이자 당시 상인이었던 신 모씨의 경우 보상금액에 대해 알아보러 다닌다는 사실이 농협 유통 측에 알려지면서 강제 퇴거 조치를 당했고, 그때의 충격으로 얼마지 않아 숨을 거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기도 했다.

반면 상인 대표 최 모씨의 경우 농협 유통의 존치 요구에 협조하기 위해 현재 수도권 하나로클럽 사장으로 재직중인 이 모씨로부터 농협중앙회의 법인카드를 제공받았으며,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내정자의 상급자인 서울시 건설국장을 접촉해 존치 결정을 요청했다는 진술도 나오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지난해 9월, 10여년 가까이 낙후된 시설에서 매출부진과 극심한 영업난을 겪으면서도 농협 유통의 말을 믿고 기흥 센터를 유지해 온 상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제 겨우 시작될 기미가 보이는 동탄신도시의 혜택을 뒤로한 채 쫓겨나야 했던 현실 뿐이었다.

김 씨는 "농협에다 무리하게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며 "LH에서 수용했을 경우 받았을 보상금을 계산해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승의 이재권 변호사는 "농협은 양재하나로클럽에서 기흥혼수센터로 이전할 당시 상인들에게 취득한 보증금 전체 액수만 40억원대에 달한다"며 "기흥혼수센터의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고도 남는 금액으로, 농협은 금전적 비용부담을 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등기부상 부동산 소유자라는 이유로 협의취득 보상금을 수령했음을 물론이고, 수백억원 대의 부동산을 소유한 반면 상인들에게는 손실보상의 기회마저 박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 유통에서는 이에 대해  "기업대 기업의 일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나 고의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으며,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며 "LH에 사실조회한 내용에 따르면 획지 구역을 정리하면서 일부 땅을 매입한 것도 있고 매각한 부분도 있다. 해당 금액들과 분담금 낸 것까지 다 따져보니 사실상 보상받은게 없고, 설사 공제를 받았다고 해도 상인들에게 줘야할 의무는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은 조정위원회 협상이 결렬된 이후 2차례 본소송 변론기일이 연기된 상태다. 이달 25일에 다음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 권안나 기자 kany872@biztribun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