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전쟁] ① 세계의 반도체, 흐름을 읽다
[반도체전쟁] ① 세계의 반도체, 흐름을 읽다
  • 하영건 기자
  • 승인 2023.01.21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업의 쌀' 반도체 

우리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무엇일까. 이 업종에 따라 한 국가의 경제적 지위가 요동치고, 이 업종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정책이 생겨나고, 실적에 따라 다른 업종들이 연달아 영향을 받는 산업.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산업을 묻는다면 '반도체'라는 대답이 곧바로 돌아온다. 

반도체는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TV,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등 다양한 전자기기 대부분에 사용되고 있다. 처음 '트랜지스터'가 발명됐을 때 그것이 이토록 많은 분야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오늘날 산업 발전의 시초가 됐고, 이후 반도체 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반도체는 일상의 필수품을 넘어, 국력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업이 됐다. 특히 한국은 전쟁 이후 폐허가 된 국토에서 싹을 틔워 국가를 대표하는 산업이 되기까지, 그 역사가 파란만장해 이 산업에 갖는 애착이 큰 나라다.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말하는 오늘날, 세계 반도체 산업은 어디로 향하고 있고, 어떤 경쟁을 벌이는 지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반도체는 크게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와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반도체로 나뉜다. 

메모리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로, 작은 칩 안에 얼마나 많은 양의 데이터를 넣어 관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이 때문에 칩 안에 넣을 수 있는 데이터를 더 많이, 더 안전하게 저장한다는 핵심기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컴퓨터 사양을 표시할 때 자주 보이는 '램'이 바로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다.

시스템반도체는 이렇게 저장된 정보를 기반으로 연산과 제어 등 정보처리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가 잘 아는 컴퓨터의 CPU가 대표적인 시스템반도체로, 시스템을 통제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지시사항을 처리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체 반도체 시장을 살펴보면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훨씬 큰데, 이것은 시스템반도체가 컴퓨터나 노트북 뿐 아니라 자동차, 스마트폰, 냉장고 등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는 시스템반도체를 많이 필요로 하는 기기로, 최근 자율주행 등 다양한 기술이 자동차에 접목됨에 따라 한 대의 자동차에 필요한 시스템반도체의 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도 메모리반도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앞으로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2018년 SK하이닉스가 개발한 세계 최초 4D낸드 구조의 96단 512Gbit TLC 낸드플래시. (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의 설계부터 제작을 모두 담당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두 기업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를 중점적으로 생산하며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세계 D램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 40.6%, SK하이닉스 29.9%로 1, 2위 기업을 합치면 점유율 70%가 넘는다.

또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1.4%로 1위, SK하이닉스가 18.5%로 3위를 차지하며 양사를 합쳐 점유율 50%에 육박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있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부문에 있어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은 3% 남짓의 아주 적은 수준으로, 대부분을 인텔과 퀄컴 등 미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를 사용하는 분야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1등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지난 18일,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개정세법에 따른 23개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개정안에 시스템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핵심 기술 등이 추가되면서 기업의 R&D와 설비 투자 시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받게 된다.

■미국과 일본(1960-1990), 반도체 산업의 OB들

100년도 되지 않는 길지 않은 반도체 산업의 역사에서 그 중심이 된 나라는 언제나 미국이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반도체 전쟁'의 중심국도 미국이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윌리엄 쇼클리가 캘리포니아에 쇼클리 반도체연구소를 세우고, 이 연구소에서 뛰쳐나온 '8인의 배신자'들이 페어차일드반도체를 세운 이후 반도체 생산의 중심지가 된 실리콘밸리는 1960년대 호황을 맞으며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페어차일드반도체 공동 창업자들, 일명 '8인의 배신자들'. (사진=위키피디아)

트랜지스터보다 뛰어난 성능의 집적회로(IC)를 개발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 D램의 개발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인텔은 60-80년대 미국 반도체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들이다.

이처럼 미국이 주도권알 잡고 있던 반도체 시장에 제조 기술력을 앞세워 치고 올라온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두 차례의 오일 쇼크 이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움츠러들자, 일본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채 D램 시장을 장악했다.

일본전기(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스, 마쓰시타는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6개를 차지하며 일본 반도체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급속도로 성장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집어삼킨 일본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환율을 조정하거나 보복 관세를 발표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고, 일본과 미국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 이후 미국의 반도체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다시 회복되는 듯 보였다.

■한국과 대만(1990~), 떠오르는 신흥강자

삼성전자는 1974년부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전끝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이다. 80년대 후반 3저 호황(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을 누리며 역량을 쌓은 삼성전자의 약진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뒤엎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죄조 64M D램을 개발하며 일본 기술을 앞지른다. 이후 256M D램, 1GB D램 등 진보된 기술을 총동원한 신제품을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간다. 삼성전자는 2002년 세계 반도체 업계 순위 2위에 이름을 올린 이후 오랫동안 미국 인텔의 뒤를 이어 2위 기업의 자리를 유지해왔다.

1992년 삼성전자가 개발한 세계 최초 64M D램. (사진=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포화상태로 새로 비집고 들어올 구석이 마땅치 않은 시기, 대만은 새로운 길을 찾아 반도체시장에 발을 들였다.

반도체 생태계는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설계만 담당하는 '팹리스' △설계업체로부터 위탁받아 생산을 진행하는 '파운드리' △설계부터 생산, 판매, 유통까지를 모두 담당하는 종합 반도체업체 'IDM'이다. 대만은 이 가운데 파운드리에 집중하며, 1987년 파운드리 전문업체 TSMC를 설립했다.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TSMC가 출범하자,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OB들은 생산설비 없이 설계 실력만 갖고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확대가 파운드리 산업에 획기적 발전을 불러왔다. 쓰임새가 다양한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설계와 생산이 분리된 생산구조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TSMC의 영향력은 크게 늘어났고, 그 성장세는 현재진행형이다. 2022년 기준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53%로 업계 1위를 기록한 TSMC는 2022년 3분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반도체 매출 순위 1위로 등극했다.

■국가를 등에 업고 자라나는 반도체 산업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산업으로 인식되면서, 각국 정부는 앞장서서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이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동맹 '칩4'. (사진=비즈트리뷴)

지난 9일, 대만 자유시보는 대만 입법원이 7일 '대만판 반도체법'으로 불리는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법안은 기술혁신·세계 공급망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한 기업이 R&D와 생산공정 설비에 투자할 경우 각각 투자비의 25%와 5%를 세액 공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업 R&D와 설비투자에 제공하는 세액공제로는 대만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인 이 조례 수정안은 연내 시행될 예정이다.

일본은 반도체 연구센터, 생산공장, 원재료 확보 등에 추경 예산을 대규모로 배정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만과 손을 잡고 일본 구마모토 공장 건설에 4조 6000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의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고 반도체 기업들에 정부가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2022년 6월 기준, 블룸버그가 발표한 '지난 1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곳 가운데 19곳이 중국 기업일 정도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약진에 긴장한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저지하기 위해 반도체 제재를 시작했다. 정책을 통한 제재와 함께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칩4(팹4) 동맹'이다. 칩4 동맹은 설계 기술과 장비에 뛰어난 미국, 메모리 부문의 한국, 파운드리 부문의 대만, 장비 분야에 강점을 지닌 일본이 모여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적인 강화를 위한 동맹을 맺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1차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함이지만, 동맹이 결성되어 잘 유지될 경우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게 된다. 서로가 지닌 역량을 주고 받으며,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기술 개발에 힘쓸 수 있어 장기적으로도 반도체 산업의 발전 속도를 크게 앞당길 수 있을 전망이다.

우리 정부도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야당이 장악하는 있는 국회가 발목을 잡고있는 형국이다. 지난 연말 국회는 반도체특별법(일명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지원폭(세액공제율 8%)이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지시로, 정부는 세액공제율을 최대 25%까지 상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최대 가전쇼 ‘CES 2023’을 참관하고 돌아온 양형자 의원(무소속)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반도체 패권 경쟁은 국가대항전이다. 이대론 안 된다"며 정치권의 지원을 촉구했다. 양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으로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한도가 상향(최대 25%) 된 개편안을 마련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15%로 묶었다. 대기업이라고 차등 적용하면 부작용이 만만찮다. 전 세계가 반도체 공장을 자국 영토 안에 확보하려는 경쟁을 벌이는 상황인데 오히려 투자를 줄이라고 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해외에선 대기업과 여기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연합체로 본다. 이런 구분이 드물다. 한배를 탔는데 덩치가 큰 선원을 차별하는 게 항해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비즈트리뷴=하영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