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니스프리 '그린워싱' 논란을 짚어보기 전에
[기자수첩] 이니스프리 '그린워싱' 논란을 짚어보기 전에
  • 윤소진 기자
  • 승인 2021.04.14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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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에 게시된 사진. 종이 부분을 분리하니 내부에 플라스틱 용기가 있다. ㅣ 페이스북 캡쳐

지난주 이니스프리에서 세럼을 구입한 한 소비자가 화장품 공병을 분해한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이 작성자는 "페이퍼 보틀이라고 해서 구입한 상품을 뜯어 보니 플라스틱 용기가 나왔다"며 "소비자 기만이자 사기"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제품은 아모레퍼시픽 자회사 이니스프리가 지난해 6월 한정판으로 출시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용기에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 용기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구와는 달리 용기 내부에 플라스틱 요기가 덧대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린워싱'을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린워싱이란 ‘green’과 ‘white washing(세탁)’의 합성어로,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위장해 홍보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와 관련 이니스프리 관계자는 "문제가 된 제품은 이니스프리가 화장품 제조 시 사용되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 비율을 높이기 위해 무색 PE 재질의 내부 용기를 사용하고 겉면에 종이 라벨을 씌운 플라스틱 저감 제품"이라며 "기존 대비 51.8%의 플라스틱을 절감해 만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용기 바깥을 싸고 있는 종이 라벨의 역할을 더욱 쉽게 설명하고자 '페이퍼 보틀'이라고 표기하게 됐다"며 "제품 패키지 박스와 홈페이지 상세 페이지에 기획 의도 및 분리배출 방법을 상세히 표기하여 안내해 드리고자 노력했으나, 제품 네이밍으로 인해 용기 전체가 종이 재질로 인식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했다"고 사과했다. 이러한 해명에도 소비자들은 페이퍼 보틀이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친환경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관련 마케팅을 이어온 이니스프리와, 업계에서 ESG경영에 앞장서 온 아모레퍼시픽에 아쉬운 흠집을 남겼다. 아모레퍼시픽은 실제로 기존 용기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약 70% 줄인 친환경 화장품 종이 용기를 개발하기도 했으며, 한솔제지와 친환경 기술 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왔기 때문에 이번 논란은 더욱더 안타깝다. 아모레퍼시픽은 그간 '그린사이클' 활동의 일환으로 수집한 화장품 공병으로 벤치를 제작하는 등 ESG경영을 실천하고 업계를 선도해 왔다.

논란이 된 제품이 그린워싱에 해당하는 것인가를 문제 삼기 전에, 소비자가 기업의 ESG 경영활동을 정확히 판단할 기준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페이퍼 보틀' 사건을 바라보면, 분명 기업이 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해당 제품이 플라스틱을 절감해 만든 친환경 제품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고려하면 해당 제품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가 점점 늘고 있지만, 사실 소비자들은 원재료나 생산 과정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판매자가 제공한 부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ESG 관련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ESG 요소가 기업 평가에 중요한 역할로 강조되고 있으나, 현재는 소비자가 이를 판단하기 위해 고려할 지표가 모호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기업에 대한 투자도 마찬가지다. 현재 녹색 채권 등 ESG 채권은 국내 3대 신용평가사와 4대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인증 및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각 사의 기준도 다르고, 글로벌 기준으로 발행되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ESG가 포괄하는 영역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개별 항목 내 평가지표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ESG평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기후변화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ESG와 같은 비재무적 가치의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ESG가 환경,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세계적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과 성장에 직결되는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라고 입을 모은다.

ESG는 이제 국내 기업의 생존 전략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아직 유럽 등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 초기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소비자, 투자자로서 기업의 ESG 성과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지금은 기업들과 금융기관의 ESG에 대한 전략, 투자계획 등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지표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그린워싱 방지와 검증을 위한 높은 수준의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비즈트리뷴=윤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