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LG-SK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기자수첩] LG-SK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 이기정 기자
  • 승인 2021.04.0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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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사
사진=양사

'오월동주(吳越同舟)'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와 오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어느날 양 국가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 배를 타고 가던 중, 풍우를 만나자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즉,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힘을 모은다는 말이다.

최근 LG와 SK의 배터리 분쟁은 또 한번 장기화 국면에 들어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LG 측에서 제기한 영업비밀 소송 결과가 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는데, 결과 나온 후에도 양측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오랜 분쟁 기간 양측이 낸 입장문만 해도 수십 건이 넘는다. 그러는 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졌고, 이제는 K-배터리라는 동지 의식보다는 분쟁에서 조금이라도 더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만 주력하는 모양세다.

특히, 지난달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주주총회에서 SK를 '가해자'라고 언급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여겨진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합의'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벼랑 끝에서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모습 뿐이다.

양사의 배터리 분쟁 장기화로 업계에서는 예전부터 K-배터리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실제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의 결정이 나오자, 폭스바겐은 보란듯이 중국 업체로 노선을 갈아탔다.

폭스바겐의 전략 변경이 꼭 양측의 분쟁 때문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폭스바겐 입장에서 새 전략을 발표한 시점을 생각해보면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라 판단된다. 결과적으로 SK와 LG 양사는 모두 타격을 받았다.

문제는 주요 거래처를 놓쳤음에도 양측의 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초 이달 11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SK가 미국 내 '철수'까지 거론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수십년간 쌓아온 K-배터리의 위상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전기차가 글로벌 트랜드로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의 격차는 좁혀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양사가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하는 단계는 벌써 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양측의 합의가 어려운 이유는 합의 금액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양보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고려한 방법을 논의해야 함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우선적으로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고, 자극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양사의 경쟁이 심화되고 치열해질수록, 글로벌 경쟁사들은 웃음을 짓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비즈트리뷴=이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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