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신춘호회장①] 고인의 어록
[故 신춘호회장①] 고인의 어록
  • 박환의 기자
  • 승인 2021.03.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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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춘호 회장 ㅣ 농심
고 신춘호 회장 ㅣ 농심

▶ 1965년 창업당시 라면시장에 진출하며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범국가적인 혼분식 장려운동도 있으니 사업전망도 밝다”

▶ 창업초기 우리 손으로 라면을 만들자며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춘호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평소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했다.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에도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새우깡은 4.5톤 트럭 80여대 물량의 밀가루를 사용하면서 개발해 냈다. 

▶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하며

“저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닙니다.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辛’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신춘호회장이 브랜드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1970년 ‘짜장면’의 실패에서였다. 유명 조리장을 초빙해 요리법을 배우고 7개월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내놓은 국내 최초 짜장라면 ‘짜장면’은 출시 초기 소위 대박이 났다. 하지만 비슷한 이름으로 급조된 미투제품의 낮은 품질에 불만을 느낀 소비자들은 짜장라면 전체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농심의 짜장면도 사라지게 됐다. 당시 신춘호회장은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춘호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되어 있다.

신춘호회장의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신춘호회장은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 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했다. 옥수수깡은 2020년 10월 출시됐고, 품절대란을 일으킬 만큼 화제가 됐었다. 
 
▶ 1990년대 해외 수출 본격화에 앞서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다” 

농심이 라면을 처음 수출한 것은 창업 6년만인 1971년부터다. 지금은 세계 100여개국에 농심이 만든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유럽의 최고봉에서 남미의 최남단까지다. 농심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 9천만불의 해외매출을 기록했다.  

▶ 2010년 조회사에서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농심은 2011년 프리미엄라면 신라면블랙을 출시했다. 신라면블랙은 출시 초기 규제와 생산중단의 역경을 딛고,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올랐다.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참 어렵게 꾸려왔다.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한여름 가마솥 옆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내 손으로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으니 농심의 라면과 스낵은 다 내 자식같다.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내가 하는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산업화 과정의 대열에서 우리 농심도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우리의 농심가족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힘을,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순수하고 정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식품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면서 세계로 나아가자” (고 신춘호회장 저서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중 발췌) 

[비즈트리뷴=박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