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실손보험의 경제학
[이슈진단] 실손보험의 경제학
  • 김민환 기자
  • 승인 2021.03.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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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험사들이 과거 판매한 실손의료보험료가 대폭 인상하거나 실손보험 판매를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새로운 실손 상품으로의 전환을 독려하고 있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도 불리는 실손보험은 가입자만 무려 3800만명에 달한다. 이를 판매한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이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지만 수요가 있기에 판매를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보험료를 인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소비자들은 반대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보험료 인상을 감수하더라도 기존 구실손의 보험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보험업계가 올해 구실손보험료 인상률을 17.5~19.5%로 결정하고 갱신 대상 가입자들에게 안내문을 발송했다. 최근 삼성화재가 18.9%의 인상 계획을 밝혔고 뒤이어 현대해상이 18% 수준으로 결정했다. 다른 보험사들도 최소 15% 이상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실제로 낸 의료비를 보상해주는 상품으로 구실손보험과 2009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판매된 표준화실손보험, 2017년 4월부터 판매된 신실손보험 등 3가지로 나뉜다. 오는 7월에 출시되는 4세대 실손보험은 의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 차등제가 적용된다.

2009년 이전에는 보험사마다 실손보험 상품이 다르고, 자기부담금이 거의 없어 이를 악용한 이른바 ‘의료쇼핑’이 성행했다. 실손보험만 있으면 무료로 비급여 진료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는 식이어서 과잉진료와 과도한 의료 서비스 이용으로 손해율이 치솟자 보험사들은 2009년 이후 상품을 표준화하고 여러 번 구조를 변경했다.

판매중단·보험료 인상 원인은 손해율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거나 보험료를 인상하는데 가장 큰 요인은 손해율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체 실손보험의 위험손해율은 131.7%, 위험손실액은 1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병원 이용량이 줄면서 손해율이 일시적으로 둔화됐지만 수치만 보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구실손보험의 손해율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142.9%로 집계됐다. 보험사가 보험료로 100만원 받아 소비자들에게 142만9000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한 셈이다. 표준화실손 손해율은 132.2%, 착한실손은 105.2%다.

보험업계에서는 손해율 악화의 배경으로 비급여 부문을 꼽았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영되지 않는 진료로 의료기관이 비급여 항목의 가격을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의원급 병원의 비급여 진료 청구금액은 1조1530억원 규모로 전년동기 대비 22.3% 증가했고 2017년 대비 무려 79.7%나 증가했다.

이러한 손해율 증가와 과도한 비급여 청구에 실손보험 판매를 유지하고 있는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고 가입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등 손해율 개선을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손보사의 경우 가입 희망자의 건강검진을 직접 실시하는 방문 진단 방식으로 가입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화재, DB손보,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등은 61세 이상, 흥국화재와 농협손보는 40세 이상, 한화손보와 롯데손보는 20세 이상 방문 진단이 필요하다. 생보사의 경우 가입 연령 한도를 낮추고 있다. 삼성생명이 60세에서 40세로, 한화생명이 65세에서 49세로, 동양생명이 60세에서 50세로 낮췄다.

보험사들은 올해 구실손보험료를 최대 19.5%까지 끌어올렸다. 구실손은 급여·비급여치료가 모두 주계약에 포함돼 있어 통상 보험사가 치료비의 100%를 보장하기에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이에 보험사들은 실손보험금 청구가 적은 소비자들에게 구실손과 표준화실손 대신 신실손보험으로의 전환을 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구실손보험 가입자는 880만명대에 달한다.

보험료를 인상하는 보험사도 있는 반면 판매를 중단하는 보험사들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미래에셋생명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고 오는 7월 금융당국 주도로 출시되는 4세대 실손보험 판매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래에셋생명을 포함해 라이나·오렌지라이프·AIA·푸본현대·KDB·KB·DB생명 등 생명보험사 9곳이 판매를 중단했고 악사·에이스·AIG 등 손해보험사 3곳도 판매를 중단하면서 생보사 8개사와 손보사 10개사만이 실손보험 판매를 유지하게 됐다.

4세대 실손으로의 전환 이득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당국과 보험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실손보험으로의 전환보다 기존 상품을 유지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새로운 실손보험 상품은 갈수록 보험료는 낮아지지만 자기부담금이 높아지는 구조로 동일한 치료를 받더라도 새로운 상품의 의료비 부담이 더 큰 상황이다. 같은 이유로 아직 실손보험이 없지만 가입을 고려하고 있는 소비자에게는 4세대 실손보험보다는 현 시점에서 가입가능한 신실손보험을 권했다.

4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보험금을 많이 타는 사람이 보험료도 더 많이 내는 보험료 차등제가 적용된다. 이론상으로 보험료가 기존 상품 대비 10~70% 낮아질 수 있어 병원 이용이 적은 소비자라면 7월 이후 새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다만 4세대 상품은 자기부담금이 가장 높아 기존에 앓고있는 지병이 있거나 병원 이용이 잦아지는 60대 이상 가입자라면 갱신 보험료가 오르더라도 기존 보험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4세대 실손보험도 도수치료 등 비급여 의료 서비스를 이용이 잦다면 보험료가 100~300%가량 할증될 수 있다.

실제로 구실손보험은 자기부담률이 0%, 표준화실손은 10% 수준인데 반해 신실손보험의 자기부담률은 급여 10~20%, 비급여 20~30%다. 4세대 실손보험은 급여 20%, 비급여 30%로 더 높다. 

이밖에도 통원 최소 공제금액도 외래시 병원별 1~2만원, 처방 조제비 8000원이지만 4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급여 진료 1만원(상급·종합병원 2만원), 비급여 진료 3만원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팔수록 적자를 보는 상품이지만 수요가 많아서 판매를 중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개개인마다 건강상태와 경제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 상황에 맞는 실손을 선택해야 하고 각사마다 보험료나 보장내역 등이 상이한 만큼 잘 살펴보고 맞는 상품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비즈트리뷴=김민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