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씨티은행 세번째 철수설
[기자수첩] 씨티은행 세번째 철수설
  • 김민환 기자
  • 승인 2021.03.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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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이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소매금융 사업 철수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금융권에 또 한번 한국씨티은행 철수설이 불거지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그동안 지점을 대거 줄이고 오랫동안 신입행원을 채용하지 않은채 신사업 진출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철수설이 심심찮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씨티그룹이 '전략적 검토'라고 밝히면서 인수후보자 마저 미리 점치는 관측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씨티그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소매금융사업 매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데 이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씨티그룹이 한국과 베트남을 포함한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 소매금융 사업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만 기업금융(IB) 부문은 남겨둘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씨티은행 철수설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했는지에 대해 확인해 본 바가 없기 때문에 말할 게 없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 철수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과 2017년에도 철수설은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수습되기를 반복했다. 2014년에는 한국 리테일 사업부문 구조조정 차원에서 자회사 씨티캐피탈 매각하면서 철수설이 나돌았다. 다만 2014년 11월 당시 박진회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기업금융과 자산관리(WM), 카드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첫번째 철수설을 일단락 됐다.

2017년 박 전 행장은 2016년 133개였던 점포를 44개로 줄이면서 또 한번 매각설이 터졌다. 내부에서 술렁였고 외부에선 매각 가능성을 의심했다. 2017년 6월 박 전 행장은 임직원들에게 "한국에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며 철수설을 일축했다. 2021년 현재 한국씨티은행의 점포는 당시보다 5개 줄어든 39개다.

이러한 고강도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초저금리와 급격한 금융 비대면화로 은행의 설 자리가 줄어든 것이 첫번째 이유다. 한국씨티은행은 점포를 줄이고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IB) 중심으로 영업 구조를 재편했지만 좀처럼 실적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2017년 8084억원에 달하던 판관비는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2018년 잠시 7032억원으로 13%(약 1000억원) 가량 줄었지만 2019년 다시 7800억원을 넘으면서 결국 한미은행 시절부터 사용하던 서울 중구 다동 사옥을 약 2000억원에 처분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1610억원으로 전년동기 2600억원 대비 38%나 줄었다. 업계에선 지난해 4분기 역시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IB) 부문에서 선전했지만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저금리 기조에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지며 실적부진을 면하긴 어렵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철수설의 배경으로 국내의 과도한 '관치 금융'이 글로벌 금융사를 국내에서 내몰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규제를 문제삼았다. 대출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조치, 배당성향 20% 제한 권고 등 금융당국이 과도하게 은행 경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배당 자제 권고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바젤위원회 조사결과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27개국이 배당 제한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씨티그룹은 한국보다 미 금융당국에서 더 큰 규제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통화감독청은 씨티그룹에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미흡으로 4억달러(약 4644억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이처럼 미국 금융당국의 규제도 만만치 않다.

당국의 금융권에 대한 규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이제 와서 규제 때문에 사업을 못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사고다. 한국씨티은행이 KB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 하나은행 처럼 해마다 성장하고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면 과연 같은 행보를 보였을까. 정말 '관치 금융'이 문제라면 국내 은행들 처럼 적응할 순 없었을까.

물론 한국에 '관치금융'이 없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가 더 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씨티그룹이 오로지 한국에서만 발을 빼려 한다면 그 주장에 힘이 실리겠지만 그렇지 않다. 씨티그룹의 철수 고려사유는 한국의 '관치 금융'과는 별개의 문제고 한국에서 글로벌 금융사가 손을 떼는 문제와도 상관관계가 없다. 

한국씨티은행이 철수한다면 그것은 단지 한국에서 비즈니스에서 실패했을 뿐이다. 과도한 정치적 의도를 담은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은 그저 편견에 사로잡힌, 저주일 뿐이다.

[비즈트리뷴=김민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