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가 이건희-경영철학①] 삼성의 '변곡점' 신경영..."모든걸 다 바꿔라"
[위대한 기업가 이건희-경영철학①] 삼성의 '변곡점' 신경영..."모든걸 다 바꿔라"
  • 이기정 기자
  • 승인 2020.10.2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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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즉 '신경영'의 시작을 알리는 고인의 어록이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ㅣ사진=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모습ㅣ사진=삼성전자

■ '미래'를 보는 안목...'신경영'으로 날개 달았다

1987년 삼성그룹을 책임지게된 이건희 회장은 취임 후부터 줄곧 '혁신'을 강조해 온 기업인이다. 다양한 사업 분야를 자신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생각으로 정의내리는 한편, 예리한 안목으로 '미래'를 준비해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일화는 1990년대 초 신세계 사장과 나눈 대화다. 이 회장은 신세계 회장에게 '백화점 사업은 무엇인가'라며 물어봤고, 대답이 늦자 "백화점은 부동산업, 호텔은 장치산업, 반도체는 시간산업, 시계는 패션사업, 가전은 조립양산업"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1993년 삼성그룹은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한다. 이 회장이 세탁기 부품이 맞지 않아 칼로 해당 조립부분을 깎아내고, 아무일 없이 조립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 회장은 바로 삼성의 경영진을 불러모아 신경영을 선언한다. 당시 이 회장은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며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여기서 아직도 많은 기업인들에게 회자되는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신경영의 핵심 철학이 나온다.

■ 이건희의 '지행 33훈'...삼성 '질 경영'을 이끌다

당시 삼성은 글로벌 경쟁사들과 비교해 고질적인 품질 문제를 앉고 있었다. 이 회장이 "전자산업은 불량률이 3% 달하면 회사가 망한다"며 "불량은 암이며, 악의 근원"이라고 강조한 점도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경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또 삼성 직원들의 '자만심'도 삼성의 문제로 지목됐다. 삼성전자 디자인고문을 담당하고 있던 후쿠다 다미오는 "삼성은 국내 최고라는 자만심에 일찍 퇴근하더라"라며 "직원들의 텃세가 심해 외국인 고문의 얘기는 들으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이 회장은 작업방식부터 기업문화까지 모든 것을 손보게 된다. 신경영을 바탕으로 삼성은 '불량품 제로'에 도전하는 한편, 이른바 '7·4제'를 도입하며 직원들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사진=삼성전자
사진=삼성전자

당시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발언을 주제로 '지행 33'훈 만들어 직원들에게 교육했다. 지행이란 지행용훈평의 준말로 알고, 행동하며, 쓸 줄 알고, 가르치고, 평가할 줄 안다는 뜻이다.

이를 토대로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철학은 '질 경영'이다. 글로벌 경쟁사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국제화와 함께, 복합화 경쟁력 제고 등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재계에서는 이러한 이건희 회장의 시도가 현재 '초일류 삼성'을 키워낸 시작점이라고 평가한다. 삼성이라는 집단에 각인된 'DNA'가 삼성의 꾸준한 성장의 거름이 됐다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인 모두가 기억하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삼성이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 뼈를 깎는 노력...라인스톱 제도와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이후 진행한 가장 대표적인 노력은 라인스톱 제도와 불량 무선전화기 등이다.

라인스톱 제도란 불량 제품을 추방하기 위해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문제점을 해결한 후 재가동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삼성이 불량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답보상태에 머물며 선진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했던 상황을 극복하려는 이 회장의 의지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시 삼성전자"라며 "3만 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이라고 질타했다.

이 제도 시행 이후 생산 담당자들의 고통이 많았지만, 삼성은 결국 1993년 전년 대비 30~50%까지의 불량품을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삼성의 '신경영' 이후 대표적인 사례는 1995년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이다. 당시 삼성의 제품 불량률은 무리한 완제품 생산으로 11.8%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에 이 부회장은 1995년 1월 고객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제품을 새 것으로 교환해주는 한편, 수거된 제품을 모두 소각했다. 이 때 15만대의 제품이 전량 폐기됐다.

[비즈트리뷴=이기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