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학자 래브넬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주장
미국 사회학자 래브넬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주장
  • 채희정 기자
  • 승인 2020.08.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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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백인 남성 도널드는 20년 넘게 금융 전문가로 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는 단기 아르바이트 알선 서비스 '태스크래빗'의 노동 희망자(태스커)로 등록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그에게 청소나 심부름을 해서 얻는 태스커 수입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태스크래빗으로부터 '제명'됐다는 메일을 받는다. 졸지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렸지만, 회사 측이 제시한 사유는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전부였다.
    
출장 요리사 파견 서비스 업체 키친서핑에 셰프로 등록한 54세 데이비드는 일을 마치고 현관에서 불룩한 백팩을 멘 채 한 발로 서서 장화를 신다가 접질려 넘어지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산재 사고'에 해당하지만 '독립사업자'로 분류된 그는 치료 기간 수입을 상실한 것은 물론 치료비까지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4명의 자녀를 둔 43세 브라이언은 일자리를 잃은 후 다른 직업을 구할 때까지 갖고 있던 고급 SUV로 돈을 벌 요량으로 우버의 고급차 서비스 '우버 블랙'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회사 측으로부터 실적부진에 따른 이용 정지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함께 저렴한 서비스인 '우버 X'일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문제는 우버가 '우버 블랙'과 '우버 X'의 요금 차이를 보전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버에서 계속 일하려면 비싼 차를 운전해주고도 싼 요금을 받으라는 회사 측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학자인 알렉산드리아 래브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교수가 쓴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원제 Hustle and Gig: Struggling and Surviving in the Sharing Economy·롤러코스터)에 소개된 플랫폼 기업 노동자들의 사연 가운데 일부다. 공유경제를 칭송하는 이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만 골라 하면서 무제한으로 돈을 버는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이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하면서도 쥐꼬리만 한 돈을 받고 직업 안정성은 떨어지는 상황에 내몰린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론 플랫폼 업체들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된 사업자'라고 강변하며 법 규정도 상당 부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저자는 "플랫폼 사업체에 종사하는 이들이 종업원이 아닌 것은 맞겠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분명한 노동"이라면서 "에어비앤비에서 집을 빌려주거나 키친서핑에서 셰프로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금전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들과는 달리 단 한마디 사전 협의도 없이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업무 수행 중 몸을 다쳐도 자비로 치료해야 하며 회사 정책에 따른 손실을 순전히 떠안아야 하는 이들에게 노동자의 권익은 다른 세계의 일일 뿐이다. 저자는 공유경제는 착취가 횡행하던 시대로 노동자를 돌려보내는 퇴행경제라고 신랄히 비판한다.
    
책은 에어비앤비, 우버, 태스크래빗, 키친서핑 등 4개 서비스에서 일하는 80여명의 노동자와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됐다. 그동안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들이 공유경제의 산업적 측면을 분석한 연구와 저서는 많았지만, 사회학자가 노동자들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가 공유경제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그러한 분석의 결과를 책으로 엮은 것은 처음이다.
     
저자는 공유경제의 퇴행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예로 우버가 은행과 제휴해 출시한 자동차 대출상품을 든다. 우버 기사들은 원칙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차로 영업을 하는데 차가 없는 경우 우버가 알선한 대출로 자동차를 구입하고 기사 수입 가운데 일정액을 원리금으로 상환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대금을 갚기까지는 회사 측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미국이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횡행하다 1917년 법으로 금지된 고용노예(indentured servitude)를 연상케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공유경제에 생계가 달린 사람들, 저자가 '분투자'라고 부르는 이들에게는 만만찮은 진입 비용이 문제가 된다. 태스크래빗이 최초의 피벗(pivot·정책 변경)을 통해 웹 기반에서 앱 기반으로 전환했을 때 스마트폰이 없거나 데이터 제공량이 많지 않은 요금제를 사용하는 노동자는 지극히 불리한 상황이 됐다. 물론 우버가 요구하는 자동차를 장만하거나 에어비앤비 사업을 위해 주택과 가재도구를 구매하는 데는 더 큰 비용이 든다. 이런 진입 비용과 함께 공유경제에 참여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노동자들이 플랫폼 업체에 더욱 얽매이게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공유경제의 장점도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우버의 월수입 보장액을 받으려면 승차 요청 중 80% 이상을 수락해야 하고 보통은 매일 일정한 시간대에 일하거나 매주 일정한 시간을 일해야 한다. 태스크래빗의 태스커는 30분 이내에 의뢰에 응답하지 않으면 그 작업을 아예 못 받고 이런 일이 거듭되면 수락률이 최소 요구치인 85%로 떨어져 이용 정지를 당할 위험이 있다. 이런 응답 규정은 지하철로 이동하느라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을 때는 물론 다른 의뢰를 받아 일하고 있을 때도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실상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표준 노동시간의 두 배가 넘는 주당 84시간에 이른다. 물론 대기 시간을 보상해주는 수당은 없다. 프로필을 관리하고 잠재적 의뢰인의 메일에 답을 하고 앱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누르는 것도 보수는 없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에어비앤비 임대인(호스트)인 27세 백인 남성 라이언은 공유경제에서 넉넉한 수입을 올리는 '성공자'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플랫폼의 '갑질'과 위험의 외주화로부터 절대 안전하지 않다. 아파트 6채를 빌려 사업을 하는 그는 아파트의 단기 임대를 금지한 법령과 전문 숙박업자를 배제하는 에어비앤비의 방침을 이중으로 위반하고 있다. 들킬 경우 한 달에 2만 달러가 넘는 임대료를 내야 하는 아파트들이 '무수익 자산'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라이언이 장만한 아파트는 관리인이나 경비가 상주하지 않고 현관 열쇠가 카드형이 아니어서 쉽게 복제할 수 있는 곳들이다. 집주인이나 관리인의 의심을 사지 않아야 하므로 웬만한 집수리는 관리인을 부르지 않고 알아서 처리한다고 한다.
    
이용자들의 평가에 목을 매는 것도 공유경제 노동자들의 숙명이다. 평점이 높아야 리스트 윗자리에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사업을 하는 36세 백인 여성 에이미는 마침 숙박객이 있을 때 집수리를 해야 해서 수리 기사가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낮은 평점을 받을까 우려한 나머지 이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제안하고 와인에 초콜릿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챙겨가서 갖은 아양을 떨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공유경제 노동자들이 마약 운반 같은 범죄행위에 본의 아니게 내몰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우버 기사나 키친서핑의 셰프, 태스크래빗의 태스커가 성희롱을 당하거나 은밀한 성적 제의를 받는 일도 다반사다. 난잡스러운 장소에 불려가 못 볼 꼴을 보고서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일도 많았다고 저자와 인터뷰한 공유경제 노동자들은 하소연했다.
    
공유경제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 것도, 이곳 종사자들의 삶이 전부 비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공유경제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전문 기술과 자본력을 갖춘 경우에는 자유, 탄력성, P2P(개인 대 개인)의 평등성을 실현해 가며 고소득과 일하는 보람을 동시에 성취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전문 기술과 자본력을 갖춘 이들은 굳이 공유경제가 아니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크며 그런 사람들이 많지도 않다. 공유경제 노동자의 다수는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안전망 없이 실직으로 내몰렸거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 취약 계층에 속한다.
    
저자는 결국 공유경제가 내세운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고 이대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노동자가 힘들게 얻은 권리와 보호장치가 '더 저렴하고 더 조악한' 발전의 허울 안에서 파괴되면서 지난 100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공유경제가 일으킨 파괴의 결과물은 위태로운 품팔이로 또 하루를 버티는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완전히 미국의 상황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공유경제에 대한 찬사 일변도인 우리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면 저자의 경고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김고명 옮김. 392쪽. 1만8천원.

[비즈트리뷴=채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