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히스토리①] 전세계 러브콜, 제2의 전성기 맞은 '짜파게티'
[라면 히스토리①] 전세계 러브콜, 제2의 전성기 맞은 '짜파게티'
  • 박진형 기자
  • 승인 2020.03.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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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농심 짜파게티가 출시 36주년을 맞았다. 짜파게티는 최근 오스카 4관왕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도 등장하면서 케이푸드(K-food) 대열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도 외국인도 짜파게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짜파게티 전성시대다.

농심이 1984년 출시한 라면 '짜파게티' / 사진=농심

한 봉지 200원 짜파게티 '라면 대중화'

선생님이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쌀밥을 싸온 학생을 혼내던 시절이 있었다. 외식업체들은 날을 정해서 밀가루 음식이나 혼분식을 판매하지 않으면 벌금을 맞기도 했다. 정부가 70년대 쌀 생산량 부족으로 보리와 면 등을 섞은 혼분식장려운동을 펼치면서다. 이때 라면은 대중적 먹거리로 부상했다.

농심은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라면을 시판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짜장면을 집에서 간편하게 즐기게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60년대 후반부터 개발에 몰두한 결과 국내 최초의 짜장라면인 '짜장면'을 시판했고, 78년에는 '삼선짜장면'을 내놨다. 

1984년 출시된 짜파게티는 '삼선짜장면'의 업그레이드 판이다. 춘장과 양파를 볶아 만든 스프로 맛을 한층 강화했다. 여기에 건더기와 맛을 부드럽게 끌어올리는 조미유로 짜장면의 풍미를 재현해 인기를 끌었다.

짜파게티 출시 당시 한봉지 가격은 200원이었다. 서울 시내 중국음식점에서 판매하던 짜장면은 600원, 짬뽕과 간짜장은 800원 선으로 판매됐다. 짜장면 한 그릇 가격에 짜파게티 3봉지를 끓여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짜장면이 고급요리까진 아니더라도 70~80년대에는 생일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만 먹는 별미였다.

◆짜장라면 네이밍 전쟁, 짜파게티 vs 짜짜로니

짜파게티는 짜장면과 이탈리아의 스파게티에서 이름을 따왔다. 당시 짜장라면 대부분이 모두짜장, 일미짜장 등 '○○짜장'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된 것과 비교하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 후 삼양식품이 '짜장면'과 이탈리아 파스타의 일종인 '마카로니'를 합친 '짜짜로니'를 선보이며 '짜파게티' 견제에 나섰다. 소비재시장에선 '이 라면 어디 회사에서 만들었지' 따지며 구매하기 보단 상품명을 중심으로 확인하고 구매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네이밍 전쟁도 한차례 펼쳐졌다.

◆짜스면, 모두짜장, 짜장박사… 짜장라면 춘추전국시대

농심의 짜파게티가 인기를 끌자 비슷한 종류의 짜장라면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물라면이 주류던 80년대 중반, 짜파게티가 비벼 먹는 별미제품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짜장라면 경쟁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85년 짜짜로니, 짜스면, 모두짜장, 88년 짜호띵, 짜장박사, 89년 일미짜장면 등 시장에 유사한 짜장라면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짜장라면 원조회사인 '농심'이 야심차게 내놓은 짜파게티의 인기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농심은 주력상품인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등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1988년 316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40%에 가까운(37.3%) 신장률을 보였다. 다만 86년에 선보인 꽃새우와 완두콩을 동결건조법으로 가공한 '새우 짜파게티'는 비싼 가격 탓에 판매 부진이 지속되면서 결국 단종됐다.

이후 농심은 짜파게티를 활용한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을 펼쳐 나갔다. 막대한 광고와 판촉비용을 아끼고, 장수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신제품을 알릴 수 있었다. 짜파게티범벅(1988년), 짜파게티 큰사발(1992년), 사천짜파게티(2004년), 사천짜파게티 큰사발(2012년) 등을 출시하며 지금의 브랜드 라인업을 구축했다.

사진=농심
사진=농심

◆ 끓이고, 넣고, 비비고 'Fun'한 나만의 요리법 '인기비결'

짜파게티는 수많은 레시피를 창출하며, 모디슈머(수정하다 'modify'와 소비자 'consumer'의 합성어. 사용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품을 활용하는 소비자) 열풍의 원조로 꼽힌다. 한우 채끝을 넣은 짜파구리부터 만두소와 파김치, 치즈까지 다양한 레시피가 있어 국민 모두가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짜파게티의 장수 인기비결은 재미다. 소비자들은 짜파게티를 활용한 자신만의 요리법을 창조하고 재미를 추구한다. 포털 사이트에 '짜파게티 레시피'를 검색하면 1만 건이 넘는 후기를 볼 수 있다. 유튜브에도 '짜파게티 먹방'이 뜨겁고, 인스타그램에는 짜파게티를 요리한 17만여 개의 사진이 나온다.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짜파게티가 국민라면으로 등극한 배경에는 재밌는 광고 카피가 한 몫했다. "짜라짜라짜 짜~ 파게티~",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카피만 읽어도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유명한 CM 송으로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일요일에 아빠가 가족에게 요리해주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이 광고는 짜파게티를 주말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간편한 한 끼 식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고 카피가 바뀌면서 출출한 저녁이나 주말에 혼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라면으로 변화를 꾀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했다.

초창기 광고모델로는 국민 엄마 ‘강부자’ 가 활동했다. 이후 탤런트 정태우, 손현주, 지창욱, 가수 김태우, 설현 등 당대 최고 인기스타들이 짜파게티 모델을 거쳐갔다.

◆기생충으로 주가상승 짜파게티, 제2의 신라면으로

짜파게티가 영화 기생충에 나오면서 세계적인 인기 스타가 됐다. 실제 짜파게티의 올해 2월 해외매출은 전년 대비 두배 이상 증가한 150만달러로 집계됐다. 월간 최대 실적이다. 지난달 9일(미국시간)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소식이 전해진 후 세계 각지에서 짜파게티 구매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짜파게티를 판매하지 않던 나라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근 수출이 없던 칠레, 바레인, 팔라우, 수단 등의 나라에서 짜파게티 수입을 요청해 올해 짜파게티 수출국도 70여개 국으로 늘어났다.

◆누적판매량 75억개, 단일상품 매출 2000억 고지 코앞

농심 짜파게티가 출시 후 지난달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양은 총 75억원이다. 신라면(34년간 325억개)과 안성탕면(37년간 153 억개)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현재까지 판매된 짜파게티를 넓이로 계산하면 축구장 35개 면적을 덮고도 남으며, 일렬로 연결하면 그 길이가 지구 둘레 40배에 달한다.

매출 성장도 뚜렷하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약 23% 성장한 1850억원의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신라면에 이어 시장 2위에 오른 짜파게티는 올해 1월과 2월에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농심은 "두 달간 짜파게티 국내 매출이 370억원을 넘어선 만큼, 연간 매출도 사상 첫 2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처음으로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 짜파게티는 10년 만에 2000억원 고지를 바라보게 됐다.

 

[비즈트리뷴=박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