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기업사下] 창립 56주년 남양유업 발자취
[단숨에 읽는 기업사下] 창립 56주년 남양유업 발자취
  • 박진형 기자
  • 승인 2020.03.1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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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양유업

'이 땅에 굶는 아기들이 없게 하겠다'는 故 홍두영 창업주의 신념으로 1964년 3월 13일, 남양유업이 설립됐다. 일본산 분유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며 충남 천안에 공장을 세운 남양유업. 북한보다 훨씬 못 살았던 남한의 보릿고개 시절부터 창립 56주년을 맞는 오늘까지 남양유업이 지나온 발자취를 짚어봤다.

1990s 고도성장기, 품질혁신기

남양유업은 1990년 '2세 경영체제'로 돌입했다. 홍원식 부사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권을 쥐었다. 1974년 기획실 부장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지 16년 만이다. 고 홍두영 창업주의 장남인 그는 경복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홍원식 신임 사장의 경영스타일은 '한우물 파기'로 유명하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1994년, 홍 사장은 "세계적인 초일류 제품들과 당당히 겨뤄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사업다각화를 미루고 한우물만 파려고 한다"는 말을 남겼다. 제품의 다각화는 추구하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배격하겠다는 의미다. '한눈 팔지 않고 기본에 철저하자' 현재 매출 1조원이 넘는 유제품 기업으로 성장한 남양유업의 경영철학이다.

홍 사장은 남양유업의 축적된 '낙농기술'을 바탕으로 종합유가공업체로 키워나갔다. 과거 회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분유 비중은 90년대 초중반 20~30%로 대폭 낮아졌다. 제품 다변화 전략을 펼친 결과다. 

파스퇴르유업, 매일유업 등 유가공업체들은 제품 다변화를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요구르트 시장에 뛰어들었다.

남양유업도 1991년 고급 발효유 '불가리스'를 내놨다. 중산층과 고학력층을 소비 타겟층으로 삼고 골프장을 주요한 판촉대상으로 삼았다. 불가리스는 1998년도까지 약 8000억개가 팔리며 효자상품 역할을 했고 현재까지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중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 증대와 요구르트 고급화 전략 등이 적중했다. 변비 개선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도 퍼지면서 여심을 사로잡았다.

남양유업은 1996년부터 모든 유제품에 1등급 원유만을 사용한다는 '우유 대혁명'을 선언해 국내 유제품 품질은 한층 높히는 데 기여했다. 1등급 원유란 1㏄당 세균마리수가 10만마리 미만인 경우로 4단계로 된 원유등급 가운데 최고등급을 의미한다.

남양유업에 있어서 90년대는 유가공분야의 선두업체로 발돋움 하는 시기다. 시장 1위 제품인 불가리스를 비롯해 임페리얼XO, 아인슈타인 등을 출시했다. 다양한 품질 관리 시스템 인증, 수상을 통해 유가공 분야의 선두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히트 상품 덕분에 남양유업의 매출액은 1995년 3478억에서 1999년 5940억으로 4년만에 70%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IMF 경제위기 때도 20%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1998년에는 상업, 조흥, 신한은행에서 빌린 180억원의 은행차입금도 모두 갚았다. 대부분 기업들이 자금 사정에 허덕일 때 무차입 경영을 보여주면서 경제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00s 제품 다각화, 경쟁력 강화

남양유업은 2000년대 들어서며 '17차'와 '프렌치카페' 등을 출시해 음료 사업에 주력했다. 오랜 기간 유제품 시장에서 명성을 쌓은 후 신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기능성 음료인 '17차'(2005년 출시)가 소위 대박을 친 후 2009년엔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존의 국내 차 시장은 대부분 녹차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떫은 맛으로 젊은 층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17차는 여러 가지 차 원료를 혼합해 부드러운 맛을 내 좋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탄산음료보다는 건강음료', 웰빙 바람까지 불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남양유업은 '17차'를 출시한 지 1년만인 2006년 단일 상품으로 1000억원의 연매출을 올렸다. 1991년 출시된 불가리스가 2006년에 이르러서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단기간에 '폭풍성장'인 셈이다. 

◆2010s 신성장 동력 발굴

유업계의 주요 소비층인 4~12세 인구가 줄어들면서 우유, 분유 시장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009년 분유시장은 3100억 규모로 그 전해에 비해 6%가량 쪼그라들었다. 우유시장도 1조9000억원 선에서 정체 상태를 보였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과거 '프렌치커피'로 음료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남양유업은 2010년 1조원 규모의 커피믹스 시장에 발을 담궜다. 수십개의 업체가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 우유시장에 비해 동서식품, 네슬레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커피믹스 시장에서 가능성을 봤다.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커피믹스'는 시장 진출 6개월만에 네슬레를 제치고 국내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른다. 남양유업은 커피사업에 힘을 더 줬다. 연간 낱개 커피믹스 50억개 분량을 생산할 수 있는 커피 전용 공장을 1800억원을 들여 전남 나주에 지었다. 기존 분유공장에 커피라인을 깔아 커피믹스를 생산했지만,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부족해 이 같은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2012년에는 아라비카 원두로 만든 원두커피믹스 '루카(LOOKA)'를 내놨다. 직접 커피전문점에 가거나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을 구입해야 느낄 수 있던 원두커피의 깊은 풍미를 대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1년 먼저 시장을 선점한 카누(KANU)를 누르기에는 격차가 많이 나는 상황이다.

이듬해에는 남양유업에게 혹한기가 찾아왔다. 영업사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며 물건을 떠넘기려는 녹취록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불매운동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2012년 637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3년엔 174억원 영업손실이 났다.

후폭풍은 컸다. 저출산 현상으로 우유 소비까지 줄어들었다. 남양유업은 2014년 우유 아이스크림을 내세운 ‘1964 백미당(이하 백미당)’ 카페를 출시하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엿봤다. 현재 전국에 80여개의 매장을 보유 중이며 상해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2017년에는 강남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원년으로 삼았다. 기업의 주력 상품인 유제품 사업의 외형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이루겠다는 각오다. '전공 외에는 다른 사업은 쳐다도 안 보겠다'는 남양유업의 '한우물 경영'이 앞으로의 50년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즈트리뷴= 박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