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秋로남불?...'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공소장 비공개 논란 일파만파
[이슈분석] 秋로남불?...'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공소장 비공개 논란 일파만파
  • 윤소진 기자
  • 승인 2020.02.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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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무부 대변인실 사무실 '의정관' 개소식에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무부 대변인실 '의정관' 개소식에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9일 검찰이 송철호 울산시장을 비롯한 청와대의 ‘하명수사·선거개입’ 사건의 핵심 피의자 13명을 전격 기소했다. 국회는 지난 4일 기소된 13명의 공소장 제출을 요구했으나 법무부가 이를 비공개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공소장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언론에 보도되면서 의혹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6일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공소장에는 당시 경찰의 수사 상황이 청와대에 21차례나 보고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앞서 청와대가 9차례 수사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한 것과는 배치된다.

공소장에는 송 시장이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을 만나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수사를 청탁한 경위가 담겨있으며,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청와대에 제공한 비위 첩보가 가공돼 울산경찰청으로 하달된 과정도 구체적으로 적시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은 국회의 제출요구에 기소된 13명의 개인정보를 삭제하고 A4용지 71장 분량의 공소장을 법무부에 전달했으나, 법무부는 공소장의 전문이 아닌 공소사실 요지를 담은 3장 분량의 자료만 국회에 제출했다.

◆ 공소장 공개는 ‘잘못된 관행’...법무부 규정에 따른 것

법무부의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비공개는 추 장관의 뜻이 반영된 결정으로 보인다. 추 장관이 5일 “공소장 전문 공개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한 데 이어 법무부는 같은 날 오후 ‘공소장 자료 제출 범위에 관한 법무부 입장-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공소 요지 등 제출’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발표했다.

법무부는 “그동안 공소장 전문을 언론에 공개한 바 없다”며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 전문이 형사재판 절차 개시 전에 공개돼온 것은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했다.

이어 “공소장은 소송 절차상 서류로서 공개 여부는 법원의 고유 권한에 해당하고, 법원행정처도 소송 절차상 서류라는 이유로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송달하는 외에는 제출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 장관이 공소장 비공개 결정의 근거로 내놓은 것은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제정된 일종의 행정규칙으로 형사사건 피의자, 참고인 등 사건관계인의 인권 보호와 무죄추정의 원칙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규정 4조는 형사사건에 관해서는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법무부는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된 것을 근거로 규칙에 따른 것이며, 국회에 자료 제출도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행정규칙을 근거로 한 법무부의 조치는 상위법인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국회증언감정법)’ 또는 국회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용지 기자
/그래픽=김용지 기자

◆ 법무부의 제출거부는 ‘위법’...상위법 준수 우선돼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국회는 주요 사건 공소장의 제출을 요구하면 받아볼 수 있게 됐다. 국가기관은 군사·외교 등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아닌 한 국회의 제출요구에 응해야 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보안이 필요하다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데 검찰이 이미 제출한 공소장을 법무부가 요지를 별도로 작성해 국회에 제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또 법무부 훈령의 상위법인 국회법 위반의 소지도 있다. 국회법 128조는 국회는 (중략) 의결을 통해 정부나 행정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이번 제출 요구는 국회 의결을 통하지 않고 개별 의원실에서 요청한 것이므로 제출 의무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법무부 규정을 근거로 법률에 근거한 공소장 제출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무부 훈령은 통상 행정규칙에 해당한다. 행정규칙은 법체계 중 가장 아래에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상위법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며 “모든 행정작용은 법률을 위반해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잘못된 관행’이라는 이유로 현행 법률에 반하는 조치를 내린 것은 국가의 법무 사무를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이 내린 결정이라고 믿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 참여연대 “인권침해는 궁색한 변명”...정치권도 한목소리 비판

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성향 시민단체도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에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참여연대는 지난 5일 논평에서 “청와대 전직 주요 공직자가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건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나 피의사실 공표 우려가 국민의 알 권리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며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해도 구태여 이 사건부터 그러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국회증언감정법을 언급하며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은 국회와 법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처사”라면서 “‘잘못된 관행’이라는 판단은 일개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국회가 입법의 형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여 세력인 정의당을 포함한 모든 야당은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6일 국회 브리핑에서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강 대변인은 “국가 기밀이 아닌 자료는 국회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규정한 법령이 엄연히 존재하고, 노무현 정부 때부터 법무부는 15년 넘게 국회에 개인정보 등을 가린 공소장 전문을 제공해왔다는 점을 미뤄볼 때 이번 결정은 타당성 없는 무리한 감추기 시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며 ““입법부에 대한 정보제공 여부를 판단을 행정부가 하겠다는 것은 독단이고, 추미애 장관의 주장처럼 공소장 공개가 잘못된 관행이라면 이는 국회가 입법의 형식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행정부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보수성향의 야당들은 더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강신업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신종 독재, 신종 코로나만큼 역겹다”며 “검사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소한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국회의 적법한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5일 논평을 내고 “가히 독재자도 부러워할 문재인 정권의 ‘사법찬스’ 위력”이라며 “추미애 장관은 정권 지키자고 급한 마음에 국민의 눈과 귀부터 막고 보자는 심정이겠으나 국회와의 싸움도 불사할 생각이면 장관직 버리고 국회로 돌아오라”고 힐난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도 6일 의원총회에서 “추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는 헌법에 위반되는 위헌이고 형사소송법, 국회법 등을 위반한 위법이다”며 “문재인 정권은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은 공개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렇게 추미애 장관이 또다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만큼 우리는 직권남용 혐의로 추 장관을 다시 고발할 것이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법무부의 결정은 ‘공소장 비공개’가 아니라 나쁜 관행에 제동을 건 ‘정당한 절차 준수’라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많은 언론이 공소장 비공개, 자료 제출 거부라고 한 것을 두고 “법무부는 요약본 형태로 공소장을 공개했고, 국회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한 것이다”며, “이미 법무부가 밝혔듯이 법무부는 한 번도 공소장 전문을 공개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국회에 공소장이 제출되면 의원실을 통해 곧바로 언론에 공개되는 ‘나쁜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일 뿐이다”며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공소장에 기재된 사건 관계인들과 관련한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유출을 막을 뿐만 아니라 무죄추정의 원칙 등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법무부의 조치는 만시지탄일지언정 부당하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고 추 장관의 결정을 옹호했다.

◆ 추로남불?...박근혜 탄핵 땐 적극 이용하고 왜 이제 와서

추 장관은 6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무부 대변인실 ‘의정관’ 개소식에 참석했다. 추 장관은 개소식에서 공소장 비공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며 직접 해명에 나섰다.

추 장관은 “국회를 통해 언론에서 피의사실이 공표돼서 사건 관계자들이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 등 여러 가지 형사 절차 관련 기본권이 침해돼왔다”며 “이 사건에 있어서 피의사실이 국회 통해 자료 요구로 여과 없이 나간다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는 (법무부 간부들이) 다 동의했다지만 제가 이 건으로 인해 정치적인 오해를 받고 상처를 받을 것을 염려해주셨다”고 답했다. 이어“그것이라면 제가 충분히 감당해내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추 장관은 2016년 11월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자신의 SNS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한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의 공소장을 거론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관련 공동정범이자 범행을 주도한 피의자"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소장 공개 여부를 두고 과거와 입장이 달라진 것이냐는 질문에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은 헌법재판의 영역이고 이번 사건은 형사재판이라 무관하다는 답을 내놨다.

추 장관은 취재진에게 “국회에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도자료와 공소장 전문의 중간 정도의 자료를 제출한 것이다”며 “국회증언감정법에 자료 제출 의무가 있는데 어디까지라는 기준이 없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귀속돼 상위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고민을 했고 그 정도로 자료 제출에 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판 절차가 개시되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공소장을)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공개하는 방식으로 될 수 있다"며 관련 재판의 개시 후 공소장 공개 절차를 진행할 여지를 남겼다. 다만 재판이 개시돼도 오는 4월 총선에 영향을 염려한 검찰이 사건의 처리를 연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구체적 혐의사실의 공개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추 장관은 이날 의정관 개소식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사법 정의를 지켜내려면 익숙한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조차 돌아선 지금 추 장관의 이러한 해명만으로는 법무부의 이번 공소장 비공개 결정에 대한 정치적 오해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트리뷴=윤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