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보호' 없는 금감원의 은행장 '중징계'
[기자수첩] '소비자보호' 없는 금감원의 은행장 '중징계'
  • 김현경 기자
  • 승인 2020.02.0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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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원금손실 사태에 대해 가장 많이 보고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 두 은행의 총 책임자인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일 것이다. 두 경영진은 DLF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시간으로 관련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두 은행은 DLF 사태 후속 대응 차원에서 현장지원반을 구성하고,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권고를 즉각 받아들였다. 또 손실을 본 투자자들과 신속하게 합의하기 위해 각각 DLF 합의조정협의회와 배상위원회를 조직했다. 4일 현재까지 우리은행은 DLF 배상대상 고객 661명 중 75.6%인 500명과 합의를 마쳤고,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달 말 기준 대상 고객 400여명 중 약 40%와 합의를 마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두 은행은 불완전판매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투자상품 리콜제, 투자 숙려제도 등을 도입했고, PB 평가지표(KPI)의 고객수익률 배점을 높이는 등 자산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이 모든 조치들이 DLF 사태 직후 6개월 만에 마련됐다. 두 은행의 발빠른 후속 대응은 두 경영진이 사태 해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은행이 사태 수습과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응책들을 주도적으로 이행해야 할 두 경영진이 모두 회사를 떠나야할 위기에 몰렸다. 앞서 지난달 30일 금감원 DLF 제재심의위원회가 손 회장과 함 부회장에 대해 중징계인 '문책경고' 처분을 내렸고, 이달 3일 윤석헌 금감원장이 이 징계안을 확정하면서다. CEO 등 임원이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손 회장과 함 부회장은 3차례 제재심을 거치는 동안 최고경영자(CEO)가 내부통제 부실 문제의 책임을 직접 질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 상품 판매 의사결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점, 후속대응이 빠르게 이뤄진 점 등을 적극 소명했다.

하지만 두 경영진의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 제2의 DLF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경영진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문제와 본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두 경영진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정말 소비자보호를 위한 조치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두 은행의 DLF 불완전판매는 분명 잘못됐다. 하지만 이는 기관 제재를 통해 해결하면 됐을 일이다. 금감원도 경영진에 대한 제재와 별개로 두 은행에 대한 일부 영업정지와 과태료 처분을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한 상태다.

DLF 사태로 두 은행이 본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금리 장기화, 경쟁 격화 등으로 이자이익에 의존하던 수익모델에서 벗어나 비이자이익 부문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관련 사업 위축이 불가피해졌다. 소비자 신뢰를 잃은 것도 큰 타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이 법적 근거 없이 휘두른 칼에 두 금융그룹은 당장 지배구조 리스크까지 떠안게 됐다. 사업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우리금융은 지난해 1월 손 회장 주도로 지주사 전환에 성공한 뒤 M&A(인수·합병) 등 그룹 성장을 위해 세워뒀을 백년대계도 모두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4만여명에 달하는 두 금융그룹의 직원들과 그룹 성장을 기대했을 투자자들, 그리고 고객들이 지게 됐다. 이번 금감원의 결정이 업계 혼란만 부추겼을 뿐 소비자보호를 위한 본질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