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전 대법관 “이재용, 준법감시위 자율·독립성 약속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 “이재용, 준법감시위 자율·독립성 약속했다”
  • 강필성 기자
  • 승인 2020.01.0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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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 경영권 승계도 준법 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총수의 법 위반에 예외를 둔다고 하면 준법감시위원회의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준법위를 통해 삼성과 사회의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약속도 받아냈다. 준법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성공 여부를 좌우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의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준법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생명으로 삼성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철저히 독립적 운영할 것”이라며 “삼성의 준법·윤리경영에 대한 파수꾼 역할을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준법위는 회사 외부에 독립하여 설치되는 기구로서 관계사들에 대한 준법감시 업무를 위탁받아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적으로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각사 이사회의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각 계열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의사결정과정과 내부의 준법여부를 감독하게 되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7개 계열사로 시작하는데 7개 계열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자신이 삼성그룹에서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은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는 심경도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 (위원장을) 제안 받고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거듭되는 요청에 제안을 받아들였다”며 “피하려 했던 이유는 진정성에 대한 의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저의 역량 부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은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최고경영진은 그동안 우리 사회로부터 여러 변화를 요구받아 왔지만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며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삼성이 먼저 벽문(壁門)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를 향한 신호다. 진의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삼성이, 준법위의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위원장 수락에 앞서 조건으로 “위원회의 구성부터 시작해서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준법감시 프로그램이 실효적으로 운영될 최소한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총수의 확약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김 위원장은 “이 부회장을 만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해 약속을 받았다”며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고 전했다. 

향후 준법위는 2월 중 위원회 구성원들과 함께 출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는 계획이다. 위원회는 김 위원장을 포함 7명으로 구성됐고 크게 법조, 시민사회, 학계, 회사의 네 그룹에서 선정됐다. 

법조에서는 대검차장 출신의 봉욱 변호사, 시민사회에서는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 공동대표,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선정됐다. 학계에서는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가 선정됐고 사측에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발탁됐다. 

이들 위원회 구성은 삼성 측의 관여 없이 김 위원장의 재량만으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준법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며 “법 위반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계열사나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협력업체와의 하도급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의 공정거래 분야나 뇌물수수나 부정청탁 등 부패행위는 물론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등에서 법 위반 리스크 관리도 준법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