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CJ ENM 허민회 사장의 사과
[기자수첩] CJ ENM 허민회 사장의 사과
  • 이서련 기자
  • 승인 2020.01.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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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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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식적인 사죄가 나왔다. 허민회 CJ ENM 대표는 30일 서울 마포구 CJ ENM센터에서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 투표 조작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였다.

‘국민 프로듀서’를 통해 검증한다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mnet의 간판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국민들의 분노와 그 파장도 컸다.

2016년 처음 시작된 프로듀스 시리즈는 파격적이었다. 방청객과 TV 앞 시청자가 온라인 투표를 통해 연습생 101명 가운데 스타성 있는 가수를 선발(픽)하고, 그들이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형식은 참신했다. ‘픽미 픽미 픽미업(나를 선택해)’이라는 주제곡이 열풍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는 인기에 비례하지 않았다. 프로듀스는 매년 ‘득표수 사이에 일정한 표차가 반복된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올해 시즌 직후인 8월, 팬들에 의해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지며 제작진은 사기 및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됐다. 경찰은 제작사인 CJ ENM을 압수수색해 수사를 시작했고 시리즈를 연출한 PD와 CP는 지난 20일,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30일 허민회 CJ ENM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해 “변명의 여지 없이 우리의 잘못”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잘못을 공식 인정했다. 그러면서 피해를 입은 연습생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지고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또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엠넷에 돌아온 이익과 향후 발생할 이익을 내놓고, 300억원 규모의 기금 및 펀드를 조성해 음악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K팝의 지속 성장을 위해 쓰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미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문화 분야에 국한된 응원하는 스타에 대한 '팬심'이 좌절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 분노한 지점은 ‘공정한 출발점’에 대한 기대와 좌절이었다. 최근 입시와 취업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는 불공정 비리와 관행들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주체적으로 투표를 하고, 순위를 밝히고 희비가 엇갈리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웃고 울었다.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예능의 소임은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정한 출발선은 없었다. 그 배신감을 감당해야 했던 국민은 고스란히 피해자로 남았다.

 

‘노력하면 될 것’이라며 끝까지 도전에 응했을 연습생들 역시 피해자다. 저명한 기업과 그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는 이들이 패배조차도 순응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노력’으로도 될 수 없는 사회를 몸소 체험하면서 마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을 대표하는 듯도 보인다. 이처럼 이번 사태는 흙수저, 금수저에 이어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등장한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 사회의 무거움을 대변한 만큼, CJ ENM의 이번 사과는 단순한 통과의례나 ‘위기 모면용’ 대처가 아니어야 한다. 직접 한국 음악 산업의 창달을 위해 재정적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확실한 신뢰회복을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 대표 문화 콘텐츠 기업’을 내세웠던 만큼, 지금 시점에서 CJ ENM의 행보가 미래 대한민국 문화 산업의 질을 결정할 수 있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허민회 사장의 사과가 진심이길 기대한다.

[비즈트리뷴=이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