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관사 특혜선정' 수출입은행의 내부통제 부재
[기자수첩] '주관사 특혜선정' 수출입은행의 내부통제 부재
  • 김현경 기자
  • 승인 2019.12.19 1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프(국민 프로듀서) 열풍'을 낳았던 엠넷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가 최근 제작진에 의해 조직적으로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줬다.

제작진이 연예기획사로부터 접대와 향응을 받은 대가로 소속 연습생이 데뷔할 수 있도록 특혜를 제공하는 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해당 프로그램은 불공정으로 얼룩졌고, 결국 대국민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공정한 방법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실망감을 또 한번 느껴야 했다.

최근 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수십조원대 외화표시채권 발행 주관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금융사로부터 접대와 향응을 받은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달 초 수출입은행에 접대·향응을 제공한 의혹으로 노무라증권 등 외국계 투자은행(IB) 2곳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외화표시채권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발행사인 수출입은행과 주관사인 IB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 7월 펴낸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최근 5년간(2014~2018년) 총 17회에 걸쳐 채권 발행 주관사를 선정하면서 특정 IB들을 주관사로 선정했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주관사를 미리 내정한 후 IB가 제출한 제안서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았고, 주관사 선정 결과에 맞춰 개인별 평가표 등 평가자료를 사후에 작성하도록 했다.

이 기간 동안 수출입은행이 발행한 외화표시채권 규모는 미국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총 25조9374억원이다. 이 과정에서 주관사로 선정된 IB들은 채권 발행액의 0.3%에 해당하는 768억원을 받았다.

수출입은행에서 5년 동안 비위행위가 발생한 것을 두고 직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이번 주관사 선정 특혜뿐만 아니라 최근 4년간(2015~2018년) 감사원으로부터 신분·금전적 이유로 총 38회에 달하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중에는 직원이 부당한 방법으로 자녀학비를 수령한 경우도 있었다.

리스크관리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정 직원의 비위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5년 동안 이를 감시·제재할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에서 리스크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일단 금융기관에서 주관사를 선정할 때 채권이 안정적으로 다 발행돼야 하기 때문에 영업력이 없거나 검증되지 않은 곳에 리스키하게 맡기지 않는다"며 "이번 수출입은행 사건 같은 경우엔 개인의 비위 문제도 크지만 일단 정상적인 시스템이라면 그런 식으로 발동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에서 발생한 이번 주관사 특혜선정 사건은 직원들의 모럴해저드와 시스템 부재 등 총체적 부실에서 빚어진 결과다. 국가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국책은행에서 발생한 불공정에 금융권에 대한 불신이 커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잃어버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수출입은행은 이번 '25조원 규모 모럴해저드'의 결말을 '자기반성'에 그치는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지난달 취임한 방문규 행장은 수출입은행의 떨어진 신뢰를 만회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