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제 유보...과로하는 중소기업 근로자 1년 더 참으라는 정부
주52시간제 유보...과로하는 중소기업 근로자 1년 더 참으라는 정부
  • 용윤신 기자
  • 승인 2019.12.1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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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정기국회종료...탄력근로제 불발
노동부, 주52시간제 중소기업 보완대책 발표

노동부가 발표한 주52시간제 보완대책을 두고 경영계의 요구만 반영하고 노동자를 외면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주52시간제 중소기업 시행을 앞두고 보완대책을 11일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10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탄력근로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이 무산된 데 따른 것이다.

■ 경영계 요구 적극 반영한 보완대책 발표

이번 조치는 1년간 계도기간 부 특별연장근로 사유에 경영상의 이유를 포함하는 등 경영계의 입장을 적극 반영한 조치로 해석된다. 

2020년 1년간은 노동자가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위반했다고 진정을 제기해 위반이 확인될 경우 노동부는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부여해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하고 처벌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주 52시간제 위반 고소·고발에 대해서는 사업주의 법 위반 사실과 함께 법 준수 노력, 고의성 여부 등을 최대한 참작해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도 확대하기로 했다.

특별연장근로는 노동부의 인가를 받아 주 52시간 초과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현행 법규상 자연재해와 재난,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을 위한 집중 노동이 필요할 때 노동부의 인가를 받아 쓸 수 있다. 사업주는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할 때 노동자 동의서를 첨부해야 한다.

이 장관은 ▲ 인명 보호와 안전 확보, 시설·설비의 장애·고장 등에 대한 긴급 대처 ▲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 ▲ 노동부가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 등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한다고 설명했다.

■ 16년만의 노동시간 단축 기대...다시 수포로

법정 노동시간은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한 이래로,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이후 주 40시간으로 줄어왔다.

마지막 개정은 2003년 8월에 이뤄져 2004년 7월부터 현행 주 5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장노동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주40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을 일해왔다. 

법정노동 40시간이지만 연장노동 12시간, 휴일노동 16시간을 더해 최대 68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다. 이번 주52시간제는 노동시간의 상한선을 낮추는 조치이다.

노동시간의 상한선이 언제나 주68시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1953년 당사자 합의에 따른 주 60시간 노동을 허용하다가, 1987년 개정안에서 주 48시간의 기준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해 장시간 노동을 방지했다.

하지만 1989년 개정안에서 당사자 합의에 따른 주 56시간으로 기준을 정했고, 2004년 노동부가 “휴일노동은 연장노동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내리고, 휴일근무는 노동시간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게 되면서 최대 68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2013년부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기존의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하는 개정안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2018년 2월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일주일이 휴일 이틀을 포함해 7일이라는 해석이 나오기까지 15년, 시행까지 16년 걸린 셈이다. 그런데 또 다시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면서 사실상 유예조치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동법 개정에 따른 노동시간 변화
노동법 개정에 따른 노동시간 변화

■ 20일 앞두고 또 ‘계도기간’..중소기업 노동자 1년 더 참아야 하나

정부가 부여한 ‘계도기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해석이 엇갈려 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브리핑에서 계도기간은 처벌 유예가 아닌 단속 유예를 의미하며, 1년간의 단속 유예 이후에도 어겼을 시에는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300인 이상 사업장의 계도기간 동안 처벌받은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적용 자체가 유예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법에 대한 행정부의 임시 조치로 인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충분한 준비 없이 법부터 개정하고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52시간제 무리한 일괄 적용으로 이번 유예조치는 당연하며 앞으로도 계속 유예할 수 있다는 추측도 난무한다.

이번 발표에서 정부는 대기업에도 유예기간을 줬으니 중소기업에도 유예기간을 주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에는 2020년 1월 1일부터 주52시간제가 적용될 것이라 예상하고 준비해온 대다수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해온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중소기업을 포함한 주 52시간 근로와 출퇴근시간 기록 의무제인 ‘칼퇴근법’, 퇴근 후 메신저 업무지시 금지 등을 포함한 적극적인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약속해 노동자들의 기대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최저임금1만원 정책 포기에 이어 노동시간 단축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만큼 정부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때다. 

[비즈트리뷴(세종)=용윤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