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소기업 주 52시간제' 사실상 유예 선언
정부 '중소기업 주 52시간제' 사실상 유예 선언
  • 용윤신 기자
  • 승인 2019.11.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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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를 사실상 유예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국회에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지만, 정당 간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채 중소기업에 대한 적용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지난 2월 노사정 합의로 국회에 넘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로 확대 법안’이 8개월 넘게 방치된 탓이다.

정부는 국회에서 심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가 무산될 경우를 대비해 이번 시행규칙 개정 절차에 착수했다. 개정안이 국회에 통과되지 않더라도 2020년 1월에 적용되는 주 52시간제 도입을 미루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번 보완대책의 핵심은 주 52시간제 위반이 적발되더라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 부여와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 완화이다.

■ 적용 40일 앞두고 계도기간 부여 발표, 중소기업에 혼란 우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2020년 1월부터 적용되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적용을 불과 40일 앞두고 있어 정부방침에 따라 주 52시간제 시행을 준비해온 중소기업에 혼란이 우려된다.

정부가 6월부터 7월까지 50~299인 사업장 1,300개소를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시간 실태조사에서 주 52시간제 준비상황을 묻는 질문에 ‘문제없음’이 61.0%이었고, ‘준비중’ 31.8%, ‘현재 준비 못하고 있음’은 7.2%로 나왔다. 정부는 39%의 기업이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해당 설문에 응한 전자제품제조 업체는 “주 52시간제가 거의 정착됐는데 정부가 물러서거나 후퇴하면 혼란 우려”된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이번 대책에는 주 52시간제를 기다리던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주 52시간제 미시행 기업 근로자는 임금삭감을 우려하면서도, 58.1%는 주 52시간제 시행 기업 근로자에 대해 상태적 박탈감을 느끼고, 70.7%는 조기도입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정부는 이미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6개월에서 9개월까지 계도기간을 부여한 전력이 있다. 대기업 적용 후 1년 6개월이 지나서도 같은 대책을 반복하니 중소기업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주 52시간 안착보다 특별연장근로 확대를 우선하는 정부

이번 발표에서 정부는 시행규칙 개정으로 ‘경영상의 사유’ 등을 포함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최대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행 특별연장근로는 기업이 자연재해와 재난에 대응해 일정 기간 집중 노동을 해야 할 경우 법정 노동시간 제한의 예외를 허용하는 제도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 해외사례 | 고용노동부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 해외사례 | 고용노동부

정부는 브리핑 참고자료로 일본, 독일, 프랑스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소개했다. 정부가 제시한 사례를 보면 해당 국가들은 특별연장근로 사유에 경영상의 이유가 포함된다.

일본은 “통상 예측하기 어려운 대폭적인 업무량 증가”,독일은 “특정 시기에 업무량이 많은 경우로서 다른 시기에 조정이 가능할 경우”나 “다른 대비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로서 비교적 적은 수의 근로자가 일시적으로 필요한 경우”, 프랑스는 “기간이 한정된 작업, 계절적 작업, 일시적 업무증가 등”의 경우와 “한시적으로 업무량이 증가하는 예외상황”에서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프랑스, 독일은 한국보다 연간 노동시간이 압도적으로 짧다. 2017년 OECD 연간 노동시간을 보면 일본이 1,710시간 일하고,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1,514시간, 1,356시간 일해 OECD 적게 일하는 것으로 상위 5개국에 드는 국가들이다. 한국은 2,024시간으로 아래서 세 번째이다. 

한국은 사례로 제시된 국가들보다 연간 314시간에서 668시간 더 일하는데 연장노동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만 해당 국가와 유사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경기침체 부담을 고민하는 정부가 공약했던 노동시간 단축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비즈트리뷴(세종)=용윤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