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배터리 시장, 전기차를 넘어서 - 한국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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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2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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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21일 배터리 시장에 대해 "전기차 시장의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해진 것은 리튬 배터리 산업의 발전 덕분"이라며 "2010년 배터리의 기본 자재인 '리튬-이온 셀'은 ㎾h당 1000달러를 상회했지만 작년에는 130달러~200달러 정도까지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박 연구원은 "지속적인 투자로 인해 전보다 더 싸고 성능이 뛰어난 배터리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공급과잉을 초래했다"며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높아진 원자재 비용에도 불구하고 캐파(capa·생산용량)를 자신있게 늘리는 이유는 현재 자사 배터리에 필적할 만한 제품이 무척 한정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보고서의 내용이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

닛산의 선덜랜드 공장은 영국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작년 이 공장에서 닛산은 전기차중 판매대수가 가장 높은 모델인 Leaf를 총 17,500대 생산했다. 동 기간 인기 SUV 모델인 Qashqais를 31만대 생산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내연기관차를 만들던 생산라인에서 Leaf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전기차 생산에 긍정적인 전개다.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경우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기차 판매량은 작년 기준으로 전체 신차 시장 중 1% 미만에 불과한 75만대를 기록했으나,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은 업계 내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2030년대에는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작년 전체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한 중국은 2020년까지 2백만대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 주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BNEF(Bloomberg New Energy Finance) 컨설팅에 의하면 석유 회사들이 내는 전기차 전망치가 지난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상향 조정됐다. OPEC은 2040년까지 2억6600천만대의 전기차가 사용될 것이라고 내다봤고, 영국과 프랑스에선 그 때쯤에는 내연기관차가 법적으로 금지될 것으로 예상됐다. 당장 올해 운행거리가 일반 내연기관차에 필적되는 모델들인 GM의 Chevrolet Volt, 테슬라의 Model 3가 최근 출시됐고, 르노 니산의 Leaf도 올해 9월 재출시될 예정이다.

성장중인 리튬 배터리 산업: 공격적인 캐파 증설

이런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해 진 것은 리튬 배터리 산업의 발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리튬 배터리는 26년전 소니의 CCD-TR1 캠코더에 탑재되었는데, 이 제품 자체도 히트를 쳤지만 제품보다는 배터리가 더 주목을 받았다. 이후 컴퓨터, 전화기, 전자담배 등 각종 전자제품에 사용되기 시작한 리튬 배터리의 작년 전체 생산량은 45GWh에 달했다. 이는 영국의 하루 평균 전기 사용량이 34GW인데, 1시간 20분 분량에 해당한다. 

아직 한편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전체 생산량은 이보다 작은 25GWh다. 그러나 컨설팅 업체인 Cairn ERA은 당장 내년에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량이 전자제품용 배터리 생산량을 추월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관련된 배터리 생산량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 5대 배터리 업체인 일본의 파나소닉, 한국의 삼성SDI와 LG화학, 중국의 BYD와 CATL은 캐파 증설에 나서 2020년까지 생산능력을 3배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는 이미 5GWh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8년에는 35GWh를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기가팩토리는 자동차용 배터리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올해 3월 엘런 머스크는 남호주 주정부에 연말까지 정전을 예방할 수 있는 배터리 시스템을 공급하겠고 약속했다. 그리고 현재 기가팩토리에서는 호주시설에 사용될 129MWh의 용량의 배터리를 만드는 중이다. 호주에 설치가 완료될 경우, 이 시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리드 기반 시스템(grid-based system)을 갖추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림 3]에서 보다시피, 배터리 셀과 모듈을 대량으로 결합하여 만든 리튬 배터리 팩은 발전량이 균일하지 않은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싶어하는 전력망 업체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소비자들은 소형 배터리팩을 구매 중이다. 자체적으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해 가장 비싼 시간대에 전력망에 팔기 위해서다.

캐파 투자의 부작용: 과잉 공급, 비용 상승

주요 생산업체들은 제품당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생산능력을 증대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2010년에는 배터리의 기본 자재인 리튬-이온 셀(lithium-ion cell)이 KWh당 $1000달러를 상회했지만 작년에는 $130에서 $200 정도까지 떨어졌다. GM은 Bolt에 탑재된 60KWh 배터리용 셀들에 대해 LG화학에 kWh 당 $145로 납품받고 있다고 밝혔고, 테슬라에 의하면 모델 3에 사용되는 셀은 이보다 더 저렴하다.

게다가 지속적인 R&D 투자로 인해 배터리의 성능도 개선됐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졌고, 내구력 또한 개선됐다. Bolt의 배터리 보증기간은 8년으로,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품질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지속적인 투자로 인해 전보다 더 싸고, 성능이 뛰어난 배터리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공급과잉을 초래했다. Cairn ERA에 의하면 작년 리튬 배터리의 생산능력은 수요를 약 30% 이상 초과했다고 한다. 게다가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판매중인 배터리의 마진이 매우 적거나 혹은 적자를 기록 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과잉에도 불구 메이저 플레이어들은 모두 확장을 지속할 계획이다. 가격을 더욱 낮추려는 목적이 그 이유 중 하나다. Cairn ERA에 의하면 이는 ‘전통적인 아시아 대기업 모델’에 의거해, 마진을 희생하는 대신 시장 점유율을 가져가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현재로서는 위태로워 보인다. 전기차와 전력저장 시스템의 수요 증가가 캐파 증진을 정당화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이 ‘골드 러시처럼 느껴지지만 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 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싸지는 원자재 가격도 배터리 생산업체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배터리에는 리튬, 코발트를 비롯한 다양한 금속들이 요구되는데, 셀 비용의 약 60%를 설명한다. 배터리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이 원자재들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해 2015년부터 리튬은 4배 이상 올랐고, 코발트도 동 기간 동안 2배 이상 상승했다. 음극재에 사용되는 니켈함유 화학제품 가격도 상승 중이다.

공급면에서는 리튬에 비해 코발트가 더 까다롭다. 리튬의 매장량은 총 210백만 톤으로 추측된다. 현재 연 생산량은 18만 톤 수준으로 향후 공급이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올해 7월에는 리튬의 최대 생산자인 칠레의 SQM이 서호주(Western Australia) 주에 110백만 달러 규모의 Joint Venture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코발트는 매장량 자체도 적은데다, 콩고민주공화국이 최대 생산국이라는 것이 문제다. 아동 노동으로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데다 광산이 반군 지배하에 놓일 가능성도 있어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LG화학의 경우, 배터리의 코발트 함유량을 줄이는 한편 성능은 향상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고 배터리의 재활용이 배터리 산업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배터리 시장: 캐파 증진 지속의 이유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높아진 원자재 비용에도 불구, 캐파를 자신있게 늘리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자사 배터리에 필적할 만한 제품이 무척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들은 수십년에 걸친 개발을 통해 리튬-이온 디바이스를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수준에서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진화시켰다. 그리고 배터리 생산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왔다.

음극재(cathode) 소재를 공급하는 CAMX Power의 CEO Kenan Sahin는 리튬 배터리의 비용, 무게, 성능, 내구성 등은 갑자기 번득인 아이디어가 나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온 결과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결과는 신규 시장 진입자들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터리 시장의 진입 장벽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존 배터리 업체들의 기술은 꾸준히 향상되는 중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8650 모델이 배터리 셀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 길이 65mm, 지름 18mm로, 소총 탄알처럼 생긴 이 모델은 킬로그램당 250Wh의 에너지 밀도를 가지고 있다. 휘발유의 에너지 밀도는 이보다 약 50배 정도 더 높다. 하지만 셀을 팩으로 묶게 되면 이 에너지의 수백 혹은 수천배를 저장할 수 있다.

지금은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개발한 2170이 가장 최신형 모델이다. 기존 모델 대비 전체적으로 외형이 더 켜졌는데 엘런 머스크에 의하면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은 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셀은 출시 예정인 모델 3에 탑재될 예정이며 원가도 이전 제품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테슬라를 비롯한 배터리 업체들의 행보는 전기차의 대중화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성능과 운행거리 외에도 다른 제약들이 존재한다. 충전이 가장 대표적이다. 영국에서는 43%의 차량 소유자들이 개인 주차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아 가정에서의 충전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가정용 전력망이 11kW 충전기를 부담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90kWh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6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기간 내 퓨즈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전기 충전소가 유력한 해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부 업체는 전기차의 운행거리에 대한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해 충전소 설치에 나섰다. 충전소 인프라 구축 속도가 전기차에 대한 기대를 쫒아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전기차 시장을 넘어서 : 전력 저장 시장

앞서 서술한 제약들은 전기차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때문에 거치형 저장(stationary storage)시장이 배터리 생산업체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SDG&E(San Diego Gas & Electric)가 샌디에이고에 설치한 시설은 38.4만개의 셀로 구성된 자동차 배터리로 120MWh의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테슬라가 호주에 약속한 시설보다 조금 작은 규모다. 전력 수요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이 시설에서 전력이 공급된다. 

한편 전력망 저장(grid-storage) 시스템은 정부 차원에서 인센티브가 주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뉴욕주는 유틸리티 업체인 Con Edison에게 브루클린과 퀸스 지역에 배터리를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노후 전력망으로 인해 신재생 에너지 사용에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뉴욕시에게는 피크 전력수요(peak power demand)를 해결할 수 있는 신규 방안인 셈이다. 뉴욕주 에너지부에 의하면 배터리는 특히 고층 건물에 유용하다. 전기료가 가장 높은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엘리베이터를 배터리로 운용하면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량기 뒤의 시장’이라고 불리는 ‘behind-the-meter’ 시장도 배터리 업체가 주목하고 있다. 가상발전소 시장으로도 알려진 이 시장은 가정용 태양광 등 소형 신재생 발전설비와 에너지 저장장치를 IoT로 융합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니산은 미국 전력 관리 업체인 Eaton과의 협력을 통해 Leaf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하고 있다. 중고 배터리를 묶어 백업 파워를 제공하려는 목적이다. 이들의 첫 대형 고객은 AFC Ajax의 홈구장인 암스테르담 아레나다.

다만, 뉴욕 소방당국은 건물내 리튬 배터리의 발화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삼성의 갤럭시 노트 7 사태가 보여줬듯이 배터리는 폭발 위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소재 활용과 세라믹 코팅과 같은 기술의 활용으로 전기차용 배터리가 매우 안전해 진 것도 사실이다.

규제 이슈도 있다. 규제와 보험문제가 가상발전소와 전력망 저장용 배터리를 설치하는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제약으로 인해 설치 업체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는게 스위스 배터리 생산업체인 Leclanche의 설명이다.

수익 창출 방안도 탐구해야 한다. 배터리를 다용도로 사용하는 ‘revenue stacking’이 현재로선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복잡해 보이지만 같은 제품을 다용도로 판매하는 것은 배터리 산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배터리 시장의 과열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배터리 산업의 장기적 전망이 매우 밝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박동우 기자, pdwpdh@biztribune.co.kr]

<비즈트리뷴은 위 기사의 내용에 의거하여 행해진 일체의 투자행위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